Global Monitor

세상의 돈 값은 누가 결정하는가

  • Analysis
  • 2015-12-14 01:35
  • (글로벌모니터 안근모 기자)
*이 칼럼은 12월14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렸습니다.

우리나라 담배는 대부분 한 갑에 4500원이다. 국민생활에 영향이 큰 품목은 예외적으로 정부가 값을 통제한다. 그러나 이게 꼭 고정된 가격은 아니다.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은 지난 10일 오전 9시2분에 3달러82센트였지만, 한 시간 뒤에는 3달러84센트로 올랐다. 달러로 환산한 우리 돈의 값이 시장에 의해 쉼 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물건의 국제가격은 달러에 의해 좌우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달러의 가치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가 주로 결정한다. 우리 원화의 값도 같은 식이다. 미국이 돈 값을 많이 올리면 우리 돈 값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그 뒤를 따라야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이 어떻게 하든, 우리는 우리의 돈 값(금리)을 고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나라 안에서 일시적으로만 유지될 뿐이다. 해외 돈 값과 괴리될수록 그 나라의 또 다른 돈 값, 환율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 나라 안의 돈 가치(물가)도 결국 달라지게 된다. 대표적 사례가 뉴질랜드이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지난 10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올 들어 네 차례나 내림으로써 지난해 올렸던 1%포인트를 모두 철회하게 됐다. 다들 돈을 풀어대는 상황에서 홀로 긴축에 나섰다가 통화가치가 급등하는 역풍을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 연준이라 해서 돈 값을 제 마음대로 정하지는 못한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거의 0%이다. 돈 값이 비싸단 뜻이다. 저유가 탓이다. 그래도 연준은 돈 값을 더 높이려 한다. 앞으로는 물가가 오를(돈 값이 하락할) 걸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제임스 불라드 총재가 지난 7일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두 번째부터의 금리인상은 물가가 실제로 상승한 걸 확인해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 며칠 전 재닛 옐런 연준 의장도 비슷하게 해석될 발언을 했다.

그런 식이라면, 지금 유가추세를 볼 때,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은 불투명해진다. 당분간 달러 가격은,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전 세계의 돈 값은 원유시장이 정한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지난 4일 아예 공식적으로 '유가에 연계한 돈 값 결정' 방침을 밝혔다. 보통 때에는 유가에 의한 물가변동을 무시하는 게 관례였지만, 지금처럼 경제환경이 나쁜 때에는 방관할 수 없다고 했다. 유가가 설사 경기와 무관한 이유로 하락한다 해도, 그로 인한 저물가가 임금을 억누르는 분위기로 파급되면 일본처럼 디플레이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게 드라기 총재의 걱정이다.

물론 유가에는 달러 가치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 동안의 유가 폭락은 달러화 초강세, 엔화 및 유로화의 초약세에 크게 기인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최근의 유가 폭락세에는 다른 두 가지 큰 힘이 작용 중이다.

첫째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대형 산유국들의 증산 경쟁이다. 둘째는 중국이다. 경제둔화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이 돈 값을 내리고 있다. 금리를 계속 낮추는 한편으로 위안화 환율은 점진적으로 오르도록 유도하는 모습이다. 지난주 위안화 환율은 4년만에 최고치로 올라갔다. 세계 최대 원자재 소비국 중국의 환율이 오르면, 수입수요가 위축돼 국제가격이 하락하기 쉽다. 이런 점에서 세계 돈 값은 사우디와 중국의 손에 달렸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환고리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 온다. 유가폭락 배경에는 달러강세뿐 아니라 미국의 셰일오일 혁명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혁명은 연준의 돈 값 인하 정책이 낳은 성과였다. 중국의 폭발적 성장과 둔화 역시 미국 통화정책 사이클과 정확히 일치한다.

미국의 국제 돈 값 결정 주도권이 이번 주에 시험대에 오른다. 깜짝 놀랄 정도로 '완화적인 긴축' 방침을 선언해 달러가 대폭 하락조정을 받으면 유가와 물가가 바닥을 칠 수도 있다. 반면, 그러지 않아서,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계속 떨어진다면, 전 세계의 돈 값은 석유시장의 무한경쟁에 맡겨지게 된다. 그 승부가 날 때까지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은 요원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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