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Monitor

금본위제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Analysis
  • 2015-11-23 08:55
  • (글로벌모니터 안근모 기자)
* 이 칼럼은 23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렸습니다.

지난 1970년대말 미국은 달러화 가치가 폭락하는 외환위기를 맞았다. 물가가 뛰어오르는 와중에도 연방준비제도는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지원한다며 돈줄을 조이지 않았다. 급기야 미국 정부는 금을 내다팔았다. 독일과 스위스에서 외화를 빌려와야 했다.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결정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달러위기 해결 임무를 부여 받은 신임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곧바로 극적인 긴축정책을 시행했다. 취임 일년쯤 뒤에는 초단기 시장금리가 20%로까지 솟아 올랐다. 우리나라 외환위기 때처럼 경제가 얼어붙고 실업이 급증했다. 전통적으로 빚이 많은 농민들이 워싱턴에 농기계를 몰고 와 시위를 벌였다.

지난 2000년대초 우리나라 한국은행의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금리를 올려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집값이 너무 올라 살기 어렵다는 하소연들이 사이버 시위처럼 일어났다. 하지만 물가안정을 목표로 삼고 있는 한국은행의 책임은 일상 생활에 쓰이는 400여가지 품목들의 평균가격에만 국한됐을 뿐, 집값은 정책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난 2008년 환율이 폭등하던 때에는 정부의 고환율 선호정책에 대중들의 불만이 들끓었다. 물가가 솟구쳐 올라 월급이 대폭 깎인 것과 같은 손실을 입은 탓이다. 외환위기 이후 평지풍파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금리와 환율정책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 되었다.

최근 공화당 대통령 후보 토론에서 연방준비제도 통화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월스트리트의 배만 불려주고" "이자로 생활하는 노인들을 궁지에 내몰고" "오바마 대통령의 방만한 재정정책을 돕는다"는 성토가 경쟁적으로 쏟아졌다. 공화당은 이미 "아주 경직된 준칙을 부여해 통화정책을 의회가 직접 감사하는" 법안을 준비해 둔 상태다. 일부 후보는 아예 금본위제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공통점은 중앙은행의 재량권을 박탈하는데 있다.

금본위제란, 예를 들어 금 1온스가 항상 1100달러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통화량을 조절하는 걸 말한다. 미국의 국제수지가 개선돼 금이 많이 유입되면 거기에 맞추어 돈을 풀고, 국제수지 악화로 금이 유출되면 그만큼 달러를 흡수하는 긴축정책을 자동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이런 제도는 과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미 사용된 적이 있었다. 공화당 후보들은 "그 때 물가가 훨씬 더 안정됐었고, 경제도 번영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학자들 대다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때에도 과잉과 침체가 발생했다. 금본위제와 같은 고정환율제의 폐해는 1990년대말 아시아 외환위기와 최근의 그리스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 중앙은행의 손발을 묶으면 묶는 대로 문제가 생기고, 풀면 푸는 대로 다른 부작용이 생긴다. 게다가 현행 물가상승률 목표제도는 수백 가지 품목의 가격에 통화정책을 고정시킨, 금본위제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진보된 제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후보들 사이에서 금본위제가 회자되는 것은 정치적 흥행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경직된 통화정책을 상징하는 금본위제는 중앙은행의 방만함에 신물이 난 대중들에게 종교적 상징인 것이다.

중앙은행은 민주적 선출과정을 거치지 않은 관료들로 구성된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적으로 독립된 중립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민주적 통제 없이 국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반복된 거품과 붕괴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현행 중앙은행 제도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중앙은행을 바꾸는 것으로써 안정과 공동번영을 이룩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가 안고 있는 주요한 경제문제들의 근원이 중앙은행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선출된 정부의 일원이며, 그들의 독립성과 중립성이란 포장에 불과하다. 자원배분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민주적 대의에 기반한 정치이다. 중앙은행은 그 일부분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중앙은행이 과도한 재량을 갖게 된 것은 정치가 역할을 방기한 결과이기도 하다. 문제의 원인을 중앙은행에게 돌리는 정치인들의 수사는 그래서 주인인 대중을 호도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을 바꾸면 삶이 조금 나아질 수는 있어도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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