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Monitor

반도체와 환율과 금리

  • Editor's Letter
  • 2026-05-29 08:47
  • (글로벌모니터 안근모 기자)
(LSEG, 글로벌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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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한 달 동안 우리나라는 대외 경상거래에서 373억27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역사에 전혀 없었던 어마어마한 흑자였다.

월간 경상수지 흑자의 확대 조짐은 지난해 말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는데, 지난 3월 들어 특히 폭발적인 양상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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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무엇보다도 상품 무역에서 흑자가 1년 전에 비해 3.6배나 불어났다.

반도체 호황이 촉발한 지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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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원화 가치는 계속 바닥을 기었다.

달러-원 환율은 오히려 3월 한 달 동안 내내 올랐다.

트럼프의 이란 침공 전쟁이 에너지 수입국인 한국의 펀더멘털을 악화할 것이란 기계적 전망이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본질적으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대적인 자본이탈이 원화 약세의 배경에 존재한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민간부문의 달러 '수요'는 357억달러로, 달러 '공급(경상수지 흑자)' 373억달러에 맞먹었다.

* 국제수지의 복식부기 원리에 따르면,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는 막대한 금융계정 유출초(대외 자산 증가)로 표기된다. 다만 민간부문이 대외 흑자의 일정부분을 국내 통화로 환전하는 점을 감안하면, 통상적으로 민간의 달러 수요는 달러 공급에 비해 기조적으로 작다. 이 경우 통상 정부부문이 부족한 달러 수요를 메꿈으로써(외환 당국 and/or 국민연금의 달러 매수 개입) 수급의 균형을 도모한다. 최근에는 국내 민간 투자자들의 외국 금융자산 매입 붐이 고조되었는데, 이 점이 민간부문의 달러 수요를 기조적으로 높인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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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비해 확연히 꺾이긴 했지만, 정부부문 역시 지난 3월 한 달 동안 12.55억달러의 달러 수요를 일으켜 환율 1500원선 돌파에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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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의 국제수지 데이터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 3월 한 달 동안에만 무려 340억달러의 국내 증권(주로 주식)을 순매도하면서 민간부문 달러 수요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경상수지 흑자로 벌어들인 달러를 외국인 투자자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주식 매도를 통해 동시에 빼내간 셈이다.

이에 따라 지난 3월에는 사상 유례가 없는 무역 호황에도 불구하고 국내 외환시장에 팔 만한 잉여 달러가 없었다.

그렇다면 외국인 주식 투자자들은 한국시장에서 철수하고 있는 것일까?

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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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한국은행 보도자료, 글로벌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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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국제투자대조표에 따르면, 3월말 현재 외국인이 보유한 한국 주식 잔고는 1조325억달러로 석 달 전에 비해 오히려 대폭 불어났다.

실제 거래상으로는('거래요인')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3개월 동안 424억달러 순매도했지만, 그들이 보유한 국내주식의 가격 상승('비거래요인')으로 그 가치가 석 달 사이에 무려 1645억달러나 팽창한 결과 주식 잔고의 평가액은 1200억달러 넘게 늘어난 것이다.

예를 들어, 주가가 세 배로 상승한 삼성전자 주식의 절반을 매도해도 보유 잔고는 주가 상승 이전에 비해 50% 더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코스피 최근 20년간. (LSEG, 글로벌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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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달러가 강할 때 한국 주식이 약하고, 달러가 하락하면 한국 증시가 오르는 패턴을 보여왔다. 달러가 약할 때에는 미국 바깥 경제의 금융환경이 이완되어 실물 경제가 강해지고, 미국의 투자자금이 미국 바깥으로 이동해 그곳의 금융 경제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어도 이번에는 반대의 패턴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이 전례가 없는 호황을 펼친 탓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전례가 없는 매도를 전개하고 있다.

그렇게 팔아 치웠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 보유한 한국 주식의 평가액이 오히려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그 매도는 sell Korea이기보다는 리밸런싱에 해당한다고 볼 만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 증시 랠리는 앞으로도 역설적이게도 원화 가치의 약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외국인의 주식 매도가 잦아든다면, 원화 가치에는 상당히 강한 상승 압력이 가해질 것이라고 또한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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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분기 중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real GDP)은 전기비 1.7% 성장했다. 팬데믹 셧다운 이후 재개방 효과가 반영됐던 지난 2020년 3분기 이후 가장 빠른 성장세였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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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중 한국의 실질 국내총소득(real GDI)은 전기비 무려 7.5% 성장했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고 했던 지난 1988년 1분기의 기록(8.0%)에 거의 맞먹으며, 38년 전의 그 기록을 제외하면 1969년 3분기 이후 가장 급격한 실질 소득 증가 속도였다.

한 마디로 지난 1분기에 대한민국은 선진 경제국가로는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의 떼돈, 돈벼락을 맞은 셈이다.

1분기 중 생산량을 1.7% 확대한 동안 실질 소득은 그보다 속도가 4.4배 더 빠른 7.5%나 폭증한 것은 반도체 가격의 폭발적인 상승 덕분이다.

한국은행 용어로는 '교역조건 개선에 따른 실질 무역이익'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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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조건'은 통상 수입물가(원가)에 대한 수출물가(판매가격)의 상대가격이다. 원가가 크게 내리고 and/or 판매가격이 크게 오르면 '순상품 교역조건(마진율에 해당)'이 크게 개선된다.

그런데 지난 3월 전월비 9.1% 폭등하면서 역대 가장 강력한 개선을 보였던 우리나라의 순상품 교역조건지수는 4월 들어 5.9% 급락하면서 역대 가장 가파른 악화로 반전했다. 수출물가가 수입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둔화한 영향이다. 1년 전에 비해서는 여전히 매우 좋으나(+14.3%), 3월에 그랬던 것만큼 엄청나게 양호했던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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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진율에 해당하는 순상품 교역조건에 수출물량을 곱하면 '소득 교역조건지수'가 된다. 마진이 좀 줄었어도 물량이 늘어나면 소득도 증가한다.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나라 교역조건의 구조가 그러했다(박리다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상품 교역조건은 매우 중요하다. 4월 들어 순상품 교역조건이 크게 악화한 것을 반영해 소득 교역조건의 전년동월비 증가율 역시 대폭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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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필자는 한동안 매일 아침마다 원유 시황(석유공사)과 반도체 시황(디램익스체인지), 그리고 일일 수출입 통관 동향(관세청)을 기사로 썼다.

원유 가격과 반도체 가격은 여전히 (주)대한민국의 마진율을 결정하는 순상품 교역조건의 핵심이며, 거기에 수출입 물량이 가세해 KOSPI와 국내총소득(GDI)을 결정한다.

2000년대 초 필자는 김일구 당시 굿모닝신한증권 채권 애널리스트와 'GDP보다 GDI에 더 주목해야 할 필요성'을 두고 토론을 한 바 있다.

그리고 나서 얼마 뒤 김일구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필자는 분석 기사를 각각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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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전 당시 필자의 문제의식은 '심각하게 악화하고 있는 GDI'가 우리 경제의 본질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구조가 정반대로 바뀌었다. GDP가 제법 강하게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GDI는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 발생한 이 엄청난 소득 중 일부는 외국인 주식투자자들이 현금화해서 가져 나가는 중이다.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그 외국인 투자자들에게서 과거와 미래의 GDI 청구권을 매입했다. 개인투자자들의 현금흐름은 크게 나빠졌지만, 장부상의 이익 또는 그 기대는 막대하다.

그리고 어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말했듯이, 삼성전자의 주주와 직원들 뿐만 아니라 국가도 엄청난 세금 수입을 얻게 되었다.

즉, 단군 이래 최대의 반도체발 호황은 시차를 두고 그 효과가 퍼져 나가며 소비자물가지수(CPI) and/or 자산가격에 수요 견인 상승압력을 가할 것이다.

다만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제기된다.

반도체에 대한 엄청난 수요는 경기순환적(cyclical)이기보다는 영구적(secular)인 것인가?

이에 대해 Editor's Letter는 그러할 듯하다고 판단한다. 다만 몇 가지 고려요소가 있다.

1) 반도체에 대한 엄청난 수요가 영구적이기 위해서는 가격이 지금보다 훨씬 저렴해야 한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해 공급이 결국 대폭 증가하고 가격은 하락할 것이다.
2) 반도체에 대한 엄청난 수요가 한국 등 특정국가에 계속 집중되지는 않을 것이다.
3) 따라서 반도체가 일으킨 한국 경제의 초호황은,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영구적인 현상, 뉴노멀이 아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얼마나 강하게 지속될 것이냐가 관건이다.

만약 이 엄청난 양(陽, positive)의 소득 충격이 일시적 현상이라 판단된다면,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의 정책도 그것에 맞게 정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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