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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계 블룸버그'된다더니 농산물 유통은 왜? 재무제표에 나타난 그린랩스

  • Korea Monitor
  • 2023-04-21 21:27
  • (글로벌모니터 김수헌 기자)
그린랩스 스마트팜 사업

그린랩스 스마트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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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초 라운드C에서 1700억을 투자받아 눈길을 끈 '애그테크(agriculture+technology)'스타트업이 있었다. 기업가치 1조를 뜻하는 유니콘 진입을 눈 앞에 둔 듯했다. 스마트팜 솔루션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 농업 혁신과 디지털화를 선도해 나갈 기업으로 주목받아 온 이 기업의 이름은 그린랩스('17년 설립).

그로부터 불과 1년여 뒤인 올해 2월 이 회사는 법정관리(기업회생)를 검토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22년 말 기준 회사 보유현금은 불과 80억원. 직원의 90%를 퇴사시켜야 할 거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실제로 내부 직원들은 직장인 익명앱에 어려운 회사 상황과 무능한 경영진에 대한 질타의 글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가까스로 주주사 가운데 두 곳이 500억 추가투자를 결정하면서 일단 급한 불은 껐다. 지난 1년여간 이 회사 사업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공시된 '22년 감사보고서 재무제표를 통해 간단하게 살펴본다.

그린랩스 손익계산서

그린랩스 손익계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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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랩스는 '22년에 매출액 2807억, 영업적자 1019억, 당기순손실 1444억을 기록했다. 매출총이익은 38억에 불과했다. 매출총이익률은 1.35%. 여기서 판관비(판매비 및 관리비)를 차감하면 필연적으로 영업적자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이 회사의 매출액 대비 판관비율은 무려 37.7%나 된다. 매출총이익률이 1% 남짓되는 회사의 판관비율이 40%에 육박한다는 이야기다.

매출구조를 보자. 상품매출이 92%다. 주력사업으로 알려졌던 스마트팜매출은 7%에 불과하다. 이 회사는 지난 1년간 사업의 주력을 스마트팜에서 온라인농산물유통업으로 바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마트팜 매출은 '21년 432억에서 '22년 207억으로 반토막 났다. 더구나 이 사업은 매출액보다 매출원가(340억)가 더 커 매출총이익 단계에서부터 적자다. 한마디로 스마트팜은 거의 접다시피했고 농산물유통플랫품 운영업체으로 변신한 것이다.

2590억의 상품매출은 이 회사가 운용한 농산물플랫폼 '신선하이'에서 창출한 것이다. 그린랩스는 농가에서 농산물을 매입하여 바이어(도소매상, 급식업체, 음식점 등)에게 팔았다. 상품매출은 '21년 532억에서 '22년 2590억으로 껑충 뛰었다.

상품매출액 대비 상품매출원가 비중은 93.7%다. 이 회사의 판관비 내 운반비는 191억이다. 운반비는 거의 농산물유통사업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품매출액 대비 운반비 하나만해도 그 비중이 7.4%다. 즉 이 회사는 농산물유통사업에서 상품매출원가에 물류비용 하나만 더하여도 상품매출액을 넘어선다는 이야기다. 영업손실이 날 수밖에 없다.

농산물직매입과 물류 등 순수한 캐시코스트(cash cost)에 속하는 변동원가 2개 항목만으로도 매출액을 넘어선다. 변동원가가 물류비 하나만 있나?

생산자와 수요자를 빨리 모아 플랫폼을 키우기 위해 이 회사는 농부에게서 사들인 농산물 대금은 빨리 주고 이를 사가는 도소매상으로부터 받아야 할 대금결제는 늦춰주는 식으로 영업을 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유통업체는 받을 돈은 빨리, 줄 돈은 늦게 줘서 현금흐름을 유지한다. 재고자산 증가가 현금흐름에 미치는 악영향을 매입채무 증가로 상쇄시킨다.

쿠팡은 손익계산서 상으로 수천억~조 단위 적자가 날 때도 영업현금현금흐름 상 현금 순유출은 몇백억원에 불과했다. 심지어 순유입을 기록하는 때도 있었다.

그린랩스는 이와는 정반대의 결제정산방식을 운용한 것이다. 주주사들의 주머니가 화수분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자금흐름에서 발생하는 미스매치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 회사는 카드사 등 2금융권으로부터 매출채권을 할인(팩토링)받아 운전자본을 맞춰나갔다고 한다. 도소매상들이 제때 대금을 결제하고, 팩토링이 무난하게 진행되어도 적자사업구조 때문에 현금흐름은 계속 악화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취약한 구조에서 대금연체 업체들이 늘면서 매출채권 회수에 문제가 생겼다. 대내외 경제환경이 불안해지면서 2금융권이 팩토링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 영향은 현금흐름표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린랩스 현금흐름표

그린랩스 현금흐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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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랩스의 현금흐름표를 보면 '21년 말 주주사로부터 확보한 투자금 750억이 '22년으로 넘어왔다. '21년 연간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하여 주주사로부터 받은 자금은 850억이다. 이 가운데 100억은 '21년 6월 유입되어 그 해 하반기 회사 운영자금으로 소진되었다.

나머지 750억이 '21년말 유입되어 '22년으로 이월된 것이다. 그리고 '22년 초 주주사로부터 다시 600억의 투자금이 들어와 총 1350억이 '22년의 영업활동에 투입된다.

'22년에 회사는 기존 차입금을 전혀 갚지않고 새 차입금만 150억 가량을 조달하였다. 따라서 이것저것 다 합치면 대략 총 1500억 자금이 영업활동 등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회사는 영업활동으로 현금을 얼마나 벌었을까. 현금기준으로 그린랩스의 영업활동에서 무려 1186억의 현금이 순유출됐다. 투자활동에서는 239억의 현금유출을 기록하였다. 투자활동 유출액 가운데 135억은 관계사에 빌려준 것으로 보이는데, 이마저도 대부분 회수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22년말 기준으로 이 회사에 남은 현금은 82억이다. 매출채권 회수가 시급한 상황이다.

그린랩스 재무상태표

그린랩스 재무상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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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랩스의 재무상태표를 보면 '22년말 매출채권 잔액 460억 가운데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대손충당금을 적립한 금액이 120억이다. 단기대여금, 미수금, 선급금 잔액 대비 대손처리한 금액비율을 각각 82%, 99%, 91%에 달한다.

자본구조를 보면 1653억의 누적결손금이 있지만 주식발행으로 1752억의 자본잉여금을 발생시켜, 그마나 자본잠식은 피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농산물 유통플랫폼 신선하이 사업을 접었다. 전사 인력의 대부분을 내보내고 있다. 주주사 가운데 두 곳이 전환사채(CB) 형태로 500억을 추가투입키로 하였는데, 이 자금 일부는 구조조정비용(퇴직금 지급)에 사용될 것이다.

회사는 지난해 말까지만해도 '농업계의 블룸버그가 되겠다'고 했고, '애그테크 플랫폼을 넘어 글로벌 농업 소셜미디어'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라인농산물유통사업에 그렇게 매달렸나? 도대체 회사의 비전과 농산물유통업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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