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Monitor

우리나라 금리의 실효하한은 어디인가?

  • Editor's Letter
  • 2019-08-07 07:09
  • (글로벌모니터 안근모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18일 기준금리를 1.50%로 25bp 인하한 뒤 기자회견에서 "당장 기준금리가 실효 하한(effective lower bound)에 근접하게 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일주일 뒤인 지난달 25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9월 중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ECB 금리가 리버설 레이트(reversal rate)에 도달했다는 신호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리버설 레이트'는 정책금리 실효 하한과 같은 말로, 중앙은행이 내릴 수 있는 정책금리의 현실적인 한계를 뜻한다. 그 밑으로 금리를 내리면 완화정책의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커진다. 이를 "경제적 하한(economic lower bound)"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역시 "현재 금리가 리버설 레이트 단계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말들은 모두 "금리를 더 내릴 여지가 제법 있다"는 점, 중앙은행 화약고에 실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 말들은 모두 동시에 중앙은행의 실탄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기도 하다. "괜찮다" "끄떡 없다"고 자꾸 강조하는 것은 괜찮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는 마치 강펀치에 나가떨어졌던 권투 선수가 가까스로 일어나 심판에게 하는 말과 같으며,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우리 위대한 미국 농부들은 중국이 그들을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글로벌모니터

ⓒ글로벌모니터

이미지 확대보기


정책금리의 하한에 관해서는 주요국 중앙은행 중 가장 먼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ECB 주변에서 논의가 특히 활발했다.

지난 2016년 7월 브누아 퀘레 ECB 이사의 연설("마이너스 금리의 함의에 관한 고찰")은 이른바 '정책금리 실효하한'을 잘 풀이해 설명한 교재다.

만일 은행 예금 금리가 0%가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은행에 맡겼던 돈을 현찰로 다 찾아버릴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수많은 거래가 은행계좌를 매개로 전자적으로 이뤄지는 요즘이다. 현찰로 거래하는 것은 여간 불편하고 위험한 일이 아니다. 적지 않은 현찰을 보관하는데 따르는 비용과 리스크 역시 상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금 금리가 마이너스 0.1%로 내려진다면? -1.0%, -2.0%로 더 인하된다면?

금리가 마이너스 일정 수준에 도달한다면, 사람마다 편차가 있긴 하겠지만, 전체 경제의 관점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현찰 보관 및 이용에 따르는 비용보다 은행에 맡겨두는데 따르는 비용(마이너스 예금금리)이 더 커지는 지점이다. 이를 "물리적 금리하한(Physical lower bound)"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잠재적으로는, 물리적 하한보다 높은 곳에 존재할 것"이라고 퀘레 이사는 3년 전에 추정했다. 0%보다 낮고 물리적 하한보다는 높은 이 마이너스 금리의 지점이 바로 "경제적 하한(economic lower bound)"이다. 이를 "정책금리의 실효 하한" 또는 "리버설 레이트"라고도 부른다.

ⓒ글로벌모니터

ⓒ글로벌모니터

이미지 확대보기
ⓒ글로벌모니터

ⓒ글로벌모니터

이미지 확대보기


정책금리의 실효하한을 결정하는 변수는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그 핵심은 은행 수익성이다.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에서 통화창출은 은행의 대출에 의해 이뤄지는데, 그 재원의 상당부분은 은행 자본이다(예: 자기자본비율 12%). 은행 수익성이 악화하면 자본축적이 더뎌지거나 심지어 자본이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출을 늘리면 은행 레버리지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진다(자기자본비율의 과도한 하락). 그렇다고 해서 은행을 건전하게 유지하려다보면 자금중개 기능, 대출활동이 위축되어 실물경제를 압박한다.

금리인하 초기에는 은행들이 돈을 더 벌게 된다. 대출이 주로 만기가 상대적으로 긴 고정금리인 반면, 조달은 만기가 짧기 때문에 마진이 단기적으로 일회적으로 커진다.

하지만 금리가 계속 낮아지고 저금리가 장기화하면 마진이 계속 쪼그라든다. 예금금리는 제로(0) 밑으로 내리기 어려운 반면, 대출 등 운용금리는 계속해서 낮아지기 때문이다.

자산에 미치는 효과도 유사하다. 장기채권을 대량으로 보유하는 은행들은 시장금리 하락 과정에서 자본차익을 얻는다. 하지만 초저금리가 장기화하면 기존의 고금리 채권이 수중에서 다 사라져간다. 자본차익 효과도 사라진다. 대신 극도로 낮은 수익률의 채권으로 갈아탄 영향으로 수익성이 악화한다.

특히 초과지준이 막대한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예치금 제도를 시행할 경우 은행 수익성 악화는 더욱 빨라지게 된다.

물론 초저금리 정책은 부도를 줄이고 대출 수요를 늘리기 때문에 은행 수익성에 거시적으로 좋은 효과를 낸다. 그러나 관련 비용이 차츰 커지고 효익이 차츰 작아지게 되면 문제가 생기기 쉽다.

즉, 정책금리의 실효하한은 '동태적'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그 하한이 높아질 수 있다. 그래서 지난 2017년 가을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이른바 '리버설 레이트'를 입에 올리며 운을 띄웠고, 지난해 들어서는 금리인상을 적극 모색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일본은행이 이제 와서는 다시 "리버설 레이트 멀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정책금리의 실효하한은 '상대적'이기도 하다.

결국 좌절하기는 했지만, 지난해는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수 있는 적기였다. 미국이 긴축에 가속도를 내고 있었고 유로존도 정상화 절차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일본의 중앙은행은 초저금리의 부작용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환경이 바뀌었다. 따라서 일본은행은 초저금리의 부작용을 꾹 참고 감내해야만 한다. 그 인내심의 정도에 따라 정책금리의 실효하한은 좀 더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그래 봐야 한계는 매우 뚜렷하다.

일본은행의 실효하한은 현 금리수준(-0.10%)을 결정하던 날(2016년 1월)에 이미 도달했다. 그 직후 은행주와 환율에서 나타난 극렬한 반응이 그 증거다.

이른바 '티어링(tiering)' 제도를 함께 도입해 마이너스 예치금 금리 제도에 물을 탄 것 역시 그 증거다. 그리고 나서 그 해 가을에 일본은행이 이른바 수익률곡선 통제(YCC) 제도를 도입해 은행 수익성 보전 장치를 만든 것 역시 증거다.

따라서 ECB가 추가 금리인하를 논의하면서 역시 '티어링' 등의 보완장치를 함께 모색하고 있는 것도 실효하한에 도달했음을 스스로 웅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글로벌모니터

ⓒ글로벌모니터

이미지 확대보기


이주열 총재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 정책금리의 실효하한은 선진국보다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차례 했던 말이기도 하다.

미국 연준은 거의 공식적으로 '마이너스 정책금리는 도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금리를 마이너스로는 내릴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하한'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한-미 정책금리가 수시로 역전할 수 있다. 우리 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지면 큰일 날 것처럼 보는 시각이 최근까지도 여전히 존재했는데, 이번 사이클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렇지 않다'는 경험을 축적하게 되었다.

우리와 같은 이머징국가들의 정책금리 실효하한은 기본적으로 환율에 의해 결정된다. 선진국 금리가 하한에 도달했든 하지 않았든,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이머징의 금리는 더 이상 내릴 수 없다.

그리고 외환시장의 안정성 여부와 여하는 금리의 절대 레벨이나 스프레드 수준과 별무관하게 랜덤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기에 우리와 같은 이머징의 정책금리 실효하한 역시 크게 변동할 수 있다. 또한 외환시장의 안정성 여부와 여하는 환율의 절대 레벨보다는 움직이는 속도, 변동성에 의해 따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중국 인민은행발 외환시장 불안은 한국은행 등 이머징의 금리인하 행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 환율이 1200원을 넘었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는 징조인 것은 전혀 아니다.

* 환율의 상승은 금융환경을 완화해 주기 때문에 금리인하와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환율 상승은 금리인하 필요성을 줄여준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우리보다 약간만 더 선진국에 가까운 취급을 받는, 그래서 우리의 벤치마크가 될 수 있는, 중국에 대한 익스포저가 크다는 공통점도 갖는 호주의 중앙은행(RBA)이 6일 '그래도 여전히 금리를 더 내릴 만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글로벌모니터

ⓒ글로벌모니터

이미지 확대보기
ⓒ글로벌모니터

ⓒ글로벌모니터

이미지 확대보기


이날 RBA는 정책금리를 예상대로 1.0%로 동결했다. 지난 6,7월 연속해서 금리를 인하한 뒤에 숨을 고르는 모습이다.

필립 로우 RBA 총재는 "보다 연장된 기간동안 저금리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면서 "위원회는 노동시장의 전개양상을 계속해서 면밀히 모니터링할 것이며, 필요한 경우 통화정책을 더 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호주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정책금리 1.0%를 뚫고 내려가 0%대에 진입했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호주 OIS 시장은 지난 6월 이후 내년 이맘때까지 호주 정책금리의 인하폭이 100bp 이상일 것임을 프라이싱하고 있다. 이미 50bp가 내려졌으니 앞으로 최소한 50bp 더 인하될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는 셈이다.

오는 12월3일 RBA 위원회의에서 정책금리가 0.50%로 50BP 추가 인하될 가능성은 거의 절반의 확률(49.4%)로 가격에 반영되어 있다. 전일 39.3%에 비해 더 높아졌다.

현재 호주달러의 가치는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은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또는, 중앙은행의 그런 적극적 완화정책 태도를 반영해 호주달러가 크게 내려간 것일 수도 있다. 돈의 값을 표현하는 두 가지 rate, 환율과 금리는 그 선후가 고정된 관계가 아니다.

ⓒ글로벌모니터

ⓒ글로벌모니터

이미지 확대보기


댓글 작성

0/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