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Monitor

ECB는 그리스의 숨통을 어떻게 조이고 있나?

  • Central Bank Watch
  • 2015-02-05 11:58
  • (글로벌모니터 안근모 기자)
4일 유럽중앙은행(ECB)이 그리스 은행들에 대한 담보 특례를 폐지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 은행들은 더 이상 그리스 국채 또는 그리스 정부가 보증한 채권을 담보로 ECB 본부로부터 돈을 빌릴 수 없게 됐다.

ECB의 이번 결정은 그리스 새 정부에 대한 경고이자 압박이다. 기존의 긴축/개혁 협약을 엄격히 준수하지 않으면 그리스 은행 시스템의 돈줄을 완전히 차단할 수도 있다는 신호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는 실질적으로 유로존에서 퇴출된다.

ECB는 과연 그리스를 몰아낼 수 있을까, 그리스 새 정부는 과연 ECB의 압박에 굴복하게 될 것인가. 이와 관련된 주요 사안들을 Q&A 형식으로 정리해 봤다.

- 이번에 폐지한 담보 특례란 무엇인가?

중앙은행은 은행의 은행이다. 따라서 ECB도 회원국 은행들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예금을 받기도 한다. 그리스 은행은 유동성이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ECB에게서 자금을 빌려써 왔다.

이때 은행들은 ECB에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 ECB 규정은 투자등급 이상의 채권만을 적격 담보로 인정해 왔다. 그러나 그리스 은행들에게는 예외를 인정해 왔다. 핵심 담보인 그리스 국채가 이미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ECB는 그리스 은행들에 한해서는 그리스 국채와 그리스 정부가 전액 보증한 증권을 담보로 인정하는 특례를 제공해 왔다. 그리스 정부가 트로이카(EU, IMF, ECB) 채권단과 긴축/개혁 프로그램 협약을 맺어 이행중이기 때문에 신뢰할 만하다고 본 것이다.

- 그렇다면 그리스 은행들은 돈줄이 끊기는 건가?

이번 특례 폐지에도 불구하고 원칙적으로는 ECB 차입이 가능하다. 그리스 은행들이 EFSF(유럽 구제금융기금) 채권 같은 적격 담보물을 제시하는 경우에는 돈을 빌릴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 은행들은 아마도 적격 담보물은 다 소진하고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ECB 차입이 차단됐다.

다만, ECB는 그리스 중앙은행을 통한 긴급유동성지원(ELA)은 계속 가능하도록 유지해 놓았다. 그리스 은행들은 따라서 그리스 중앙은행(BOG)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이날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그리스 4대 은행 가운데 이미 두 곳이 BOG의 ELA를 사용하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이미 기술적으로 ECB 차입이 거의 차단된 상태였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상징성이 더 강하다.

- ECB 대출과 BOG 대출은 어떤 차이가 있나?

은행들이 돈을 빌린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다만, BOG를 통한 ELA 대출은, ECB 대출과 달리, 손실위험이 그리스 중앙은행에게만 귀속된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BOG가 그 손실을 모두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BOG의 자본이 잠식되면 그리스 정부가 예산으로 출자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앞으로 그리스 은행들에게 지원되는 자금은 모두 그리스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라'는 것이기도 하다. 여타 회원국의 손실분담(risk sharing)이 확대될 가능성을 차단한 조치다.

이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자국 국채를 자기 위험부담으로 매입하는 최근의 ECB 국채매입 QE와 같은 맥락이다.

- 이번 조치는 예견되었던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전격적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대체로 다음달초쯤에나 그런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걸로 봐왔다. 이달 말이면 그리스와 트로이카 간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종료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연장되지 않는다면, 특례를 인정할 만한 명분은 사라지게 되며, ECB는 기술적으로 특례 폐지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았다.

예를 들어 지난달 31일 비토르 콘스탄시오 ECB 부총재는 "투자적격 등급 아래에 있는 그리스에 만약 더 이상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특례가 폐지되는 게 놀랄 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ECB는 프로그램이 종료되기 이전인 이날 전격적으로 특례를 폐지했다. "프로그램 검토 작업이 성공적으로 종료될 것으로 간주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앞서 그리스 새 정부는 '트로이카와는 더 이상 협력하지 않겠다. 프로그램은 이달말로 종료된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기존 프로그램으로 약속했던 두 곳의 국유자산 매각계획을 일방적으로 철회했으며, 해고 공무원 복직과 연금 인상 등 프로그램에 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ECB는 '프로그램'이 실질적으로 무효화됐다고 간주한 것이다.

- 그럼 앞으로 그리스 은행들은 BOG를 통해 차질 없이 유동성을 구할 수 있나?

장담할 수 없다. BOG로부터 긴급유동성지원(ELA)을 받는데도 담보가 필요하다. 물론 이 대출에서는 그리스 국채 등을 계속 담보로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그리스 은행들의 담보 자체가 거의 소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 중앙은행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12월말 현재 그리스 은행들은 중앙은행으로부터 총 560.4억 유로의 자금을 빌린 상태다. 한달 사이에만 무려 111.9억 유로나 급증했다.

반면, 그리스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은 12월말 현재 총 706.8억 유로에 불과하다. 이 중 부적격 담보를 제외하고, 헤어컷까지 감안하면 담보로 더 사용할 수 있는 채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긴축/개혁 프로그램에 따라 그리스 은행들은 그리스 단기국채를 담보로 사용하는데 제한(35억 유로)을 받고 있다. 이미 지난 12월말 현재 그리스 은행들은 74억 유로의 단기국채를 보유 중이다. 담보로 사용 불가능한 채권을 약 40억 유로어치나 정부로부터 떠안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금인출이 계속되면 그리스 은행들은 만기도래 대출금을 회수해 응하는 수밖에 없다.

- 담보가 있다면 ELA 자금은 계속 조달할 수 있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ECB 정책위원회(Governing Council)는 BOG의 ELA를 차단할 권한도 갖고 있다. 정책위원회는 매달 두 차례씩 열린다. 다음 회의는 18일(수)로 예정돼 있다.

ECB가 ELA를 제한 또는 차단할 수 있는 근거는 두 가지이다.

대상 은행이 더 이상 상환능력(solvent)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리고 ELA가 유로시스템의 목표와 임무를 저해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 등이다.

일단 ECB는 이날 회의에서 그리스 은행들의 거래 자격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얼마전 마무리된 은행 스트레스테스트를 통해 상환능력은 인정받아 있는 상태다. 관건은 '유로시스템의 임무와 목표를 저해하는 지 여부'다.

이러한 기준은 지극히 재량적이다. 실질적인 유로존 퇴출에 해당하기 때문에 지극히 정치적이기도 하다. ELA 차단 결정, 즉 유로존 퇴출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정책위원회의 3분의2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ECB 정책위원은 총 25명이다. 올해부터는 이 중 21명만이 투표권을 갖게 된다. 총재를 비롯한 6명의 집행이사들은 당연직 투표권자다. 나머지 19개 회원국 중앙은행 총재 중 15명이 매달 순번제로 투표권을 갖게 된다.

이달 회의에서는 프랑스, 아일랜드, 그리스 자신, 키프로스 중앙은행 총재들이 투표에서 빠진다. 공교롭게도 그리스에 심정적으로 우호적인 나라들이 이달에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날 예상을 앞선 전격적인 조치도 그래서 가능했을 수 있다. ☞ ECB 정책위원회 투표권 순번표

6명의 집행이사들이 퇴출을 모두 찬성한다고 가정할 경우, 나머지 15명의 중앙은행 총재들 중 8명이 반대표를 던져줘야 그리스는 유로존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다만, 이같은 메가톤급 결정은 아마도 중앙은행이 감당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 그리스 새 정부의 입장은?

이번 조치는 야니스 바로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과 마리오 드라기 총재간의 면담 직후에 발표됐다. 그리스 정부로서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일단 그리스 재무부는 "이번 결정은 EU에게 상호에게 이로운 합의를 도출하라는 압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스 정부는 당초 ECB에게 '오는 5월말까지는 자금지원을 계속해 달라'는 입장이었다. 6월초에는 새로운 부채협약이 마련될 것이니, 기존 프로그램이 종료되더라도, 3개월간의 공백기간은 유예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울러 35억 유로로 제한해 놓은 단기국채 담보한도는 증액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그리스 정부는 당초 예정됐던 잔여 구제금융 집행분 70억 유로 가운데 IMF 몫 50억 유로는 거부하고 유럽기금 19억 유로만 받아쓰겠다는 입장이었다. 부족한 자금은 단기국채를 발행해 충당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담보한도 증액은 필수적이었다. 그리스 은행들 말고는 단기국채라도 받아 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술했듯이 그리스 은행들은 이미 담보한도를 넘어서는 단기국채를 떠 안은 상태다. 한도를 넘어서는 단기국채를 인수하는 만큼 그리스 은행은 민간에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다. 그리스 정부가 민간의 자금을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ECB로서는 단기국채 담보한도 증액에 부정적이다. 한도를 늘려주면 중앙은행이 그리스 정부에게 직접 돈을 빌려주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 앞으로 잠재위험은?

당장 그리스 은행의 유동성 사정은 더 나빠질 개연성이 커졌다. ECB와 그리스 새 정부가 충돌하고, 그리스 은행들은 그 사이에 끼어 돈줄이 끊기는 형국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돼 심화되던 예금인출 사태가 가속도를 낼 위험이 있다.

아무리 우량한 은행이라도 중앙은행이 '무제한'으로 유동성을 지원해주지 않는 한 예금인출 사태를 이겨낼 도리는 없다. 예금인출 사태는 오로지 중앙은행이 무제한으로 뒤를 받쳐준다는 신뢰가 있을 때만 중단시킬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의 뱅크런이 악화될 경우 예금인출 및 자금이동 제한 등 키프로스와 유사한 자본통제가 가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압박에 대해 그리스 새 정부가 '유로존 탈퇴'를 불사하고 저항할 것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리스 새 정부의 '유로존 탈퇴 불사' 저항에 ECB가 퇴출 불사로 맞받을 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치킨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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