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Monitor

양적완화의 두 얼굴과 ECB QE

  • Central Bank Watch
  • 2014-04-08 06:18
  • (글로벌모니터 안근모 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양적완화 정책 도입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환율 변동을 면밀히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유로화의 지속적인 절상은 유로존의 저물가를 장기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 QE를 가동해 통화절상을 저지, 물가안정을 도모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었다.

양적완화(QE: Quantitative Easing)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통화정책을 상징하는 수단이다. 미국과 영국, 유로존, 일본 등 4대 준비통화국가의 중앙은행들이 다양한 형태의 QE를 시행해왔다.

그러나 양적완화라고 해서 다 똑 같은 QE는 아니다. 정책의도와 목표에 따라 QE의 양태가 달라지며, 수반되는 부작용과 출구전략도 차별화된다. 따라서 QE 종류에 대한 구분법을 이해하면 중앙은행들의 현행 QE가 야기할 금융시장 변화 양상을 가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향후의 통화정책 전개방향을 예측해 나가는 데에도 매우 유용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먼저 QE의 대명사 격인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연준이 지난 2월에 공개한 FOMC 속기록에 따르면, 지난 2008년 12월 회의에서 버냉키 당시 의장은 QE의 종류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당시 연준은 처음으로 QE를 시행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일본은행이 일본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실시한 전례가 있었다. 버냉키 의장은 일본은행의 QE와 연준의 그것은 "사과와 오렌지의 차이처럼 아주 다른 전략"이라고 위원들에게 설명했다.

버냉키 의장에 따르면, 일본은행이 과거에 실시했던 QE는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의 '부채'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었다. 중앙은행의 부채항목 중에서도 은행의 지급준비금 잔고를 늘리는데 목적이 있었다. 은행 지준에 신규 유동성을 대거 공급함으로써 대출을 활성화해 물가와 자산가격을 인상시켜 경기를 부양한다는 전략이었다.

물론 주지하다시피 일본의 은행들은 넘치는 유동성을 공급받고도 대출을 늘리지 않았다. 하지만 버냉키 의장은 양적완화가 시행되는 동안에는 기준금리가 인상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를 형성함으로써 최소한의 성과는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구조에 대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버냉키 의장은 지난해 'QE 축소/종료' 선언을 통해 '조기 금리인상' 공포를 야기했다. 그렇다면 당시의 충격은 커뮤니케이션의 실패가 아닌 의도적 전략이었을까?

2008년 당시 연준이 시행한 QE1은 일본은행과 다른 전략을 갖고 있었다.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의 '자산'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었다. 은행들로부터 대출채권을 매입하고 모기지증권(MBS)을 사들이는 등 특정한 자산을 인수함으로써 해당 자산과 관련된 시장에 특화된 부양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버냉키 의장은 설명했다. 이는 모기지증권 매입을 우선시했던 QE3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통해 연준은 세계 최대의 모기지 은행으로 탈바꿈했으며, 미국의 주택가격은 회복세를 넘어서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에 반해 국채매입을 위주로 했던 QE2는 과거 일본은행과 같은 성격의 초과지준 확대 정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QE1과 QE3는 특정 분야에 직접 신용을 공급하는 미시 정책이었고, QE2는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 정책이었다.

당시 버냉키 의장은 따라서 과거 일본은행의 QE와 달리 연준의 QE1으로 발생한 초과 지준은 연준의 목표라기보다는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는 후술하겠지만, 향후 출구전략 수행과정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QE의 성격을 구분하는 또 다른 기준은 드라기 총재가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제시했다. 드라기 총재는 향후 ECB가 수행할 지도 모를 QE의 양태를 설명하면서 "미국은 자본시장에 기반한 경제인 반면, 유로존은 은행대출에 기반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드라기 총재는 금융위기 이후 유명무실해진 자산담보부증권(ABS) 시장을 활성화할 계획을 소개했다. 미국과 같은 국채매입 방식 보다는, 하게 된다면, 기업여신을 유동화한 ABS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QE를 시행할 뜻을 시사한 것이다.

드라기 총재의 설명을 유추해 보면,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은 주로 자산가격 경로를 통해 실물경제를 부양한다. 장기채권을 매입해 장기 시장금리를 떨어뜨리면 민간의 자본이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행위(hunt for yield)에 나서면서 주식과 주택, 회사채 등 광범위한 자산의 가격을 끌어 올린다. 이는 부(富)의 효과(wealth effect)를 발생시켜 개인의 소비지출을 증대시킨다. 주가상승으로 실물자산 대체비용이 낮아진(토빈의 Q 상승) 기업들은 설비투자에 나선다.

반면 미국과 달리 자본시장보다는 은행업이 발달한 유로존에서는 신용경로를 통해 실물경제를 부양해야 한다. 금리인하를 통해 가계와 기업의 채무부담을 낮춰주는 것뿐 아니라, 은행의 대출유인을 높이는 추가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업여신 ABS를 매입하는 양적완화는 ECB에 유용한 정책이 될 수 있다. 은행들은 대출을 늘릴 수 있는 유동성을 제공받을 뿐 아니라, 기업여신에 수반되는 신용 위험을 중앙은행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ECB가 염두에 두고 있는 ABS QE는 유로절하를 노린 게 아닌 전형적인 성장지원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ECB 스타일의 QE가 유로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효과를 낳을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ECB가 ABS 매입에 나설 경우 본원통화가 증가하고 인플레이션이 반등하겠지만, 동시에 유로존의 실질 경제성장률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유로화 표시자산의 매력을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따라서 유로화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는 앞으로 ECB가 고민해야 할 요소일 것이다. 다만 초과 유동성 예치금에 ECB가 부여하는 이자율을 마이너스로 인하하는 정책수단을 병행하면 유로화 절상압력을 상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2008년 버냉키 당시 의장의 QE 구분법은 향후 연준 출구전략에도 시사점이 크다. QE3가 국채와 모기지증권의 수익률을 인하하는데 주목적이 있었다면, 버냉키 의장의 말처럼 이에 수반된 초과지준의 증가는 원치 않은 부산물일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연준은 QE 종료 이전에라도 초과지준을 거둬 들이는 불태화정책(sterilization)에 나설 수 있다. 이미 연준은 역 레포와 기간물 예금제도를 통해 최근 4개월 사이에만 1000억 달러가 넘는 초과 유동성을 묶어놓은 상태다. 이를 통해 연준은 그림자금융 시장에 총 2000억 달러 규모의 국채담보를 제공하는 세계최대의 섀도우뱅커로 변모했다. 뉴욕 연준은 7일부터 기관당 역 레포 매입 한도를 7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로 확대, 불태화에 가속도를 낼 태세다.

불태화를 병행하는 양적완화 정책은 우리나라의 외환시장 개입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원화의 과도한 절상과 환율 변동성을 억제하기 위해 달러를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시행하는 한편으로 통화안정증권 발행과 환매조건부채권매각(연준의 역 레포와 동일)을 통해 은행시스템에 공급된 초과 유동성을 수속하고 있다.

연준의 불태화 정책은 중장기적으로 달러화에 강세압력을 가하게 되는데, 이는 ECB로 하여금 유로화 절상 부담 없이 ABS 매입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간접효과를 낳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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