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Monitor

연준의 약속이 미덥지 않은 이유

  • Analysis
  • 2013-12-17 06:20
  • (글로벌모니터 안근모 기자)
이달 초 발표된 미국의 11월 실업률은 7.0%였다. 한달 새 0.2%포인트 하락한 수치인데, 누구보다도 연방준비제도가 가장 놀랐을 것이다.

지난 6월19일,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내년 상반기말에 양적완화를 종료할 것이며 그때 실업률은 7.0% 수준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7.0%의 실업률은 연준의 예상보다 무려 7개월이나 앞당겨 달성됐다. 연준은 반년 뒤조차 내다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버렸다.

지난해 12월, 연준은 '2015년 6월말까지'로 약속했던 제로금리 유지 기간을 '실업률이 6.5%로 떨어질 때까지'로 변경했다. 다만 당시 연준은 '실업률이 6.5%로 떨어지는 시기는 애초에 약속했던 2015년 6월쯤'이라고 밝혀 제로금리 유지기간 자체는 변함이 없음을 시장에 알렸다.

그러나 그 시기가 앞으로 1년 7개월이나 남은 상태에서 실업률은 벌써 '목표치'에 0.5%포인트 차이로 다가섰다. 지난 6월부터 불과 5개월 사이에 실업률이 0.6%포인트나 떨어진 걸 감안하면 연준의 '금리인상 검토 개시 지점(threshold)' 6.5%는 그야말로 목전(目前)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시각으로 19일 새벽에 공개될 FOMC 결과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연준이 과연 이 실업률 기준을 낮추는지 여부다. 예를 들어 6.5%로 돼 있는 기준을 6.0%로 변경하게 되면 금리인상 고려 시점이 공식적으로 뒤로 미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제로금리 유지기간은 공식적으로 연장된다.

다만 연준 내부에서는 이러한 변경 아이디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그런 식으로 기준을 자꾸 바꾸면 '연준이 경제환경이나 정책목표가 바뀔 때마다 통화정책의 가이드라인을 수시로 변경한다'는 비난과 불신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업률 기준을 그렇게 내렸다가도 물가문제가 고개를 들게 되면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실업률 기준을 올려버릴 수(긴축)도 있다는 시장의 인식을 불가피하게 야기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경제지표 수치를 내걸고 미래 통화정책 경로를 약속하는 '포워드 가이던스'라는 정책수단 자체가 유효성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시장 일각에서는 연준이 실업률 기준은 그대로 둔 채 '6.5% 이하로 떨어진 뒤에도 제로금리는 상당기간 유지할 것'이라는 약속을 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상당기간'이라는 게 너무나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실업률이 6.5% 아래로 떨어진 뒤부터는 연준이 언제 금리를 인상할 지 모르는 불확실하고 두려운 상황에 금융시장이 처하게 된다.

유력한 차기 연준 부의장 감으로 거명되며 지난주 시장의 핫이슈로 떠오른 스탠리 피셔 전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도 이러한 문제들을 일찌감치 제기했다. "중앙은행조차도 1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래의 통화정책을 미리 약속하게 되면 시장은 이를 신뢰할 수 없고, 중앙은행은 정책의 유연성을 상실한다."

어쨌든 미국의 실업률은 골칫거리다. 실업률을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떨어뜨리고 있는 경제활동참가율의 하락 추세가 언제까지 어느 수준까지 이어질 지 아무도 알 수가 없고, 따라서 실업률이 언제까지 어느 선까지 하락할지도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경제활동참가율의 하락이 어디까지가 경기순환적인 이유 탓이고, 어느 정도가 미국경제의 구조적 변화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는 따라서 연준과 금융시장 참가자 모두에게 곤혹스러운 일이다. 적정 실업률이 어느 수준으로 변경되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실업률을 통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나 통화정책 방향에 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금리인상의 시기를 놓쳐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도 있고, 자칫하면 성급하게 긴축에 나서는 바람에 경기회복세를 죽여버릴 수도 있다.

'적정 실업률'에 관해서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 기준이 거론돼 왔다. 하나는 '자연 실업률(natural unemployment rate)'이고 또 하나는 '균형 실업률(NAIRU : 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이다. 일반적으로 '자연 실업률'은 경제 펀더멘털의 구조적 변화에 따라 형성되는 것으로 단기변동이 크지 않으며 사후적으로나 추산할 수 있는 개념으로 여겨진다. 반면에 '균형 실업률'은 경기 순환적 요소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연 실업률을 중심으로 등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바람직한 통화정책이란 실업률이 이러한 적정 실업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렇다면 미국의 자연 실업률과 균형 실업률은 어느 수준일까. 혹은 지금 어느 방향으로 어떠한 강도로 움직이고 있을까.

먼저 자연 실업률을 변동시키는 구조적인 변화를 보자. 일반적으로 노동가능인구가 급증하는 시기에는 자연 실업률이 상승한다. 특히 청년 노동력이 신규로 대거 공급된 지난 1970년대초의 미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새로 공급된 청년 노동력은 기술 숙련도가 낮은 반면 기대임금은 높기 때문에 노동력에 대한 수급 불일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대폭 상승하던 시기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이렇게 자연 실업률이 구조적으로 상승했는데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이 과거의 낮은 실업률을 추구한다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된다. 급증한 신규 노동력을 다 흡수할 만큼 고용이 왕성하다는 것은 경기가 지나치게 뜨겁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난 1990년대 이후에는 추세가 바뀌었다. 신규 노동력 공급이 가시적으로 둔화됐고 여성의 경제활동참여도 정점을 찍었다. 자연 실업률도 빠른 하락추세를 타고 있을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인구의 고령화도 자연 실업률을 떨어뜨렸을 것이다. 고령 노동력들은 상대적으로 저임금에 대한 수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위기 이후 더욱 빨라진 노동력의 퇴장, 특히 청년과 여성을 중심으로 한 경제활동참가율 추락은 미국의 자연 실업률을 더욱 더 낮췄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경제가 연 2% 수준의 미적지근한 성장세 속에서도 실업률이 계속 하락한 것은 자연 실업률로의 수렴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점을 감안할 때 6.5%로 돼 있는 연준의 '금리인상 고려 실업률' 기준은 너무 높게 설정돼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실업률이 6.5% 아래로 떨어진 뒤에도 상당기간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는 연준의 스탠스는 정당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에는 자연 실업률을 인상시키는 구조적인 요인도 크게 발생해 있다. 수요 측면에서 발생한 압력이다. 1990년대 이후 가속화된 세계화와 생산기지 이전으로 숙련도나 부가가치가 낮은 노동력에 대한 미국 내 수요는 대폭 줄어든 것이다. 노동 수요의 급감은 노동 공급의 급증과 마찬가지의 충격을 자연 실업률에 가하게 된다.

아울러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전세계적인 수요부진은 노동력 전반에 대한 수요를 위축시켰고, 이러한 현상은 장기 구조적으로 진행되면서 자연 실업률을 끌어 올리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연준이 제로금리를 지나치게 오래 유지하고 실업률을 지나치게 떨어뜨릴 경우 임금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인 자연 실업률 인상/인하 효과가 각각 어느 정도인지, 그 추세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 정확히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데 있다. 안정돼 있는 자연 실업률도 파악하기 어려운데 움직이는 자연 실업률을 어떻게 알겠는가 말이다.

아울러 청년 및 여성 노동력의 퇴장과 글로벌 수요의 침체가 구조적인 현상이어서 자연 실업률을 끌어내리고 있는 지, 아니면 경기 순환적인 것이어서 단지 균형 실업률(NAIRU)을 일시적으로 변경시켰을 뿐인지도 알기가 어렵다. 전자인 경우에는 통화정책은 무용하며 후자인 경우에는 통화정책은 긴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난 수년간 FOMC 내부에서 다양한 토론이 펼쳐졌으나 중론이 모아지지는 않았다.

미국 경제와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위험을 똑같이 안고 있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시장에서 미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구조적인 수급변화도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지난 2000년 이후 미국의 노동시장에서는 교육/보건, 레저/숙박, 전문/기업서비스 업종에서는 꾸준한 고용창출이 이뤄진 반면, 제조, 건설, 도소매판매, 운수/창고 부문에서는 고용이 대폭 감소했거나 신규고용이 창출되지 않고 있다. 건설이나 제조업 기술자가 하루 아침에 보건산업 노동자로 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 쪽에서는 구인난이 다른 쪽에서는 구직난이 비정상적으로 심화되고 있을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이는 한 쪽에서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른 쪽에서는 디플레이션 압력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는 통화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만약 이러한 미시적 변화가 미국 경제 전반의 자연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져 있다면 연준은 초과 부양의 우를 범할 위험이 있다. 이 문제 역시 FOMC 내부에서 수시로 논의됐으나 역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지금 연준은 상전(桑田)이 벽해(碧海)로 바뀐 곳을 낡은 육도(陸圖)만을 들고 항해하고 있는 함선이다. 그리고 그 위에는 71억3000만 세계 경제가 동승해 있다.

그렇다면 새 선장 재닛 옐런과 부선장 스탠리 피셔는 이 함선을 어디로 이끌까. 한 쪽 길은 디플레이션 위험이, 다른 쪽 길은 인플레이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고 단지 '추측'만 된다면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재닛 옐런은 지난해 그래프를 그려줘 가며 미래의 '최적 통화정책 경로(optimal policy path)'를 설명한 바 있다. 앞으로 수년간은 강력한 디플레이션 파이팅을, 이후에는 강력한 인플레이션 파이팅을 제시했다. 새 부의장으로 거명되고 있는 스탠리 피셔 역시 '유연한' 통화정책 성향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로 재직 중이던 2009년초에 일찌감치 양적완화 정책을 도입했다가 그 해 말에는 금리를 인상했다.

'최적'을 추구하는 중앙은행의 유연한 정책이란 결국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순식간에 번갈아 트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그러나 연준의 지식은 그렇게까지 정교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버냉키의 '실업률 7.0%' 발언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완벽히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연준의 자신감은 분명 과도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연준 스스로도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다면, 그들은 장기 저금리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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