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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수 총재의 "美 조기긴축" 전망

  • Analysis
  • 2013-04-01 07:26
  • (글로벌모니터 안근모 기자)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의 조기 출구전략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지난 1월18일부터다. 은행장들과의 금융협의회에서 김 총재는 미국의 통화부양책과 관련해 "생각보다 빨리 소위 언와인딩(unwinding) 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지금 양적완화 정책으로부터 대응책이 나올 가능성에 대해서 대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름 전에 공개된 12월 FOMC 의사록에 따르자면 김 총재의 판단은 옳았다. 그 전달의 FOMC 성명서나 벤 버냉키 의장의 기자회견 내용으로 추론해 보더라도 일리 있는 분석이었다.

한달쯤 뒤인 지난 2월21일에도 김 총재는 `2013 경제학 공동 학술대회`에서 "선진 경제의 회복 가시화에 따른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출구전략을 시행할 경우 유동성 흡수, 보유자산 매각 등의 조치로 국제 금융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2월말 의회증언을 통해 부양 조기종료론을 일축했지만, 김 총재는 한달쯤 뒤인 지난달 20일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진전했다. 연준이 양적완화를 조기에 중단하고 출구전략도 서둘러 시행할 것이라는 김 총재의 판단은 신념으로 굳어져 가는 듯했다.

"미국에서 당초 계획이 양적완화는 빠르면 올해말, 늦으면 내년초까지 지속되고 제로금리 출구전략은 그것보다 1년 후에 시작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 경제가 좋아지면서 내부에서 좀 더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김 총재가 연준의 조기 출구전략론을 거듭 거론한 것은 금리동결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정책은 실험대상이 될 수 없어서 금리를 한 번 올렸다가 또 내리고 할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연준이 긴축에 나서면 김 총재의 말대로 우리나라로 유입됐던 글로벌 유동성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 우리는 이에 대응해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압력을 받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외자는 더욱 빠른 속도로 유출돼 충격을 배가(倍加)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연준이 조기에 출구전략에 나선다면, 지금 금리를 내리는 것은 더 위험하다. 머지않아 금리를 다시 올려야 하는데 인상폭은 더 커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금리를 내릴 수는 없다. 이것이 김 총재의 생각인 듯하다.

김 총재의 발언 하루 뒤, FOMC 성명서와 버냉키 의장의 기자회견은 양적완화 조기 종료론을 다시 한 번 불식시켰다. 그런데도 김 총재는 "성명서가 예상과 같은 수준으로 나왔다"고 평가했다. 그리고는 `조기 출구전략론`은 언급하지 않은 채 "장기 저금리의 거품 야기 우려"를 들고 나왔다. 연준의 조기긴축이 불가피함을 우회적으로 강조하는 화법인가, 아니면 실효(失效)한 종전의 금리동결 근거를 폐기하고 새로운 명분으로 갈아탄 것인가? 아직은 분명치 않다.

만약 김 총재가 여전히 연준의 조기 출구전략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있다면, 이같은 분석은 필자의 판단과 완전히 다르다. 필자가 보기에 김 총재는 잘못된 예측이나 정보를 전제로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만일 김 총재가 필자를 비롯한 전세계 대다수의 연준 관찰자들과는 다른, 내밀하고 신뢰할 만한 경로를 통해 연준의 정책방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면, 이는 연준이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실패하고 있으며, 연준 통화정책 기조와 관련해 정보의 비대칭성이 발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자는 한국은행의 문제이고, 후자는 연준의 문제이다. 진실이 어느 쪽이든 문제는 심각하다.

필자는 지난해 10월부터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연준 내부의 불편한 심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해왔다. 무제한 QE3를 결정한 9월 FOMC 의사록을 보고서부터다. 지난해 12월에는 양적완화 규모의 확대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 기조가 지속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연준 내부의 정서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의구심은 지난 2월 하순 버냉키 의장의 의회증언 이후로 버리게 됐다. 연준이 양적완화 카드를 조기에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이달초 확신으로 바뀌었다. QE 축소론을 앞장서 주창해오던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준 총재가 입장을 돌변했기 때문이다. 불라드 총재의 번복에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도 있었다. 인플레이션은 커녕 지금 미국은 오히려 디플레이션 압력을 다시 받고 있기 때문이다. ☞ 관련기사 : 연준은 달러를 더 풀어야 하나

대부분의 정책들을 보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정반대의 실수를 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1930년대초 미국은 연준의 긴축적인 통화정책 때문에 경기침체로 끝낼 수 있었던 충격을 공황으로까지 심화시켰다. 이게 밀튼 프리드먼의 대공황 분석이었고, 이 분석을 수용한 것이 버냉키의 공격적인 통화부양책이다.

당시 미국의 또 하나의 실책은 1937년에 나왔다. 경기가 좀 살아나니까 성급하게 재정과 통화를 긴축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은 다시 한 번 공황에 빠져 들었다. 그래서 지금의 연준은 이 부분에도 착안을 하고 있다. 연준은 앞으로 성급한 긴축에 나서지 않을 것이며 적정한 타이밍보다 좀 늦춰서 부양기조를 거둬들일 것이다.

연준은 실제로 지난해 9월 FOMC에서부터 이런 약속을 공식화했다. 연준은 당시 성명서에서 "경제회복이 강화된 뒤에도 상당한 기간동안 고도의 부양정책을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버냉키 의장은 당시 회견에서 "서둘러서 부양책을 중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후에도 연준 고위 인사들은 반복해서 조기 긴축 가능성을 일축했다.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추가부양 가능성까지 거론하기 시작했다. ☞ 관련기사 : "무기한 제로금리" 커지는 목소리

따라서 앞으로 위험이 있다면, 연준의 조기 긴축으로 인한 경기 및 유동성 수축보다는 긴축 지연에 따른 인플레이션의 확률이 더 높다. 연준이 만약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인다면 디플레이션보다는 인플레이션 위험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다면 그러한 인플레이션의 위험은 언제 도래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것보다 상당히 더 오랜 시간 뒤의 일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적어도 그 시기가 김중수 총재가 말하듯이 `시장이 예상하는 것보다 앞당겨져` 도래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본다.

유로존과 일본 등 대규모 경제블록의 총수요가 미국을 따라 가시적으로 증가하기 전에는, 혹은 중국이 지난 2009년과 같은 초대형 재정부양책을 쓰기 전에는, 인플레이션의 도래는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지금과 같은 미국만의 나홀로 경기회복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해외로부터 디플레이션이 수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11월,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이사의 그 유명한 <디플레이션 : 이 땅에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연설을 다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연설에서 버냉키 이사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심각한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연준은 필요하다면 무슨 조치든 취할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I am confident that the Fed would take whatever means necessary to prevent significant deflation in the United States)"

지난해 7월말 유로존을 살려낸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무엇이든 하겠다(the ECB is ready to do whatever it takes to preserve the euro)" 선언은 사실 벤 버냉키 박사가 원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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