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Monitor

`日本化(japanization)`의 자격

  • China/Japan Express
  • 2012-12-20 03:53
  • (글로벌모니터 안근모 기자)
"미국 국채시장을 바라보는 한국과 싱가포르, 태국 등지 고객들의 시각이 바뀌었다. 이들도 이제는 서구의 국채시장 역시 일본화(japanization)의 길을 걷게 됐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지난달 노무라증권은 보고서에서 아시아 주요국 고객들을 탐방한 결과를 이렇게 기술했다. 보고서가 말하는 `일본화(japanization)`란 국채수익률이 일본처럼 장기간 아주 낮은 상태를 이어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경제영역에서 `일본화(japanization)`라는 용어는 보다 다양하게 사용된다. 노무라처럼 장기간 지속되는 낮은 시장금리를 의미하기도 하고, 장기간의 부양적 통화/재정정책을 뜻하기도 하며, 그러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초저성장 속에서 리세션과 디플레이션이 반복되는 거시적 현상 - 예를 들면 유동성 함정 - 을 말하기도 하며, 이 모두를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같은 기술들은 모두 표면적 현상으로 나타난 결과물에서 공통점을 찾아내고 있을 뿐, 지난 20년간 일본경제의 총체적 부진에 작용하고 있는 본질과 根因을 다루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경제와 본질적인 공통점을 갖게 하는, 경제를 `일본화`로 이끄는 원인은 무엇일까. 본질적 근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그 뿌리에 보다 근접해 있는 현상을 추출하는 것이 도움이 될 텐데, 그것은 바로 `낮은 부도율`이다.

도이치뱅크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는 그런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률과 기업 부도율간의 일반적인 상관관계가 대폭 약화됐다. 즉,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더라도 부도율은 잘 높아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과거의 기준에서 판단해 볼 때 현재의 부도율은 지나치게 낮게 형성돼 있음은 물론이다.

보고서는 그 배경으로 중앙은행들의 통화증발 정책과 대량 부도사태를 막기 위한 정부당국의 유동성 공급정책으로 꼽았다.

이같은 현상은 특히 유럽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아래 그래프는 순서대로 미국과 유럽의 경제성장률과 투기등급 채권 부도율 추이이다. 시각적 이해도를 높이기 우해 우축의 부도율은 반전시켰다. 유럽의 경우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음에도 부도율 역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지출처:도이치뱅크)ⓒ글로벌모니터

(이미지출처:도이치뱅크)ⓒ글로벌모니터

이미지 확대보기


이러한 정책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낮은 부도율 현상의 원조는 당연히 일본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부실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금융지원을 늘리고, 상대적으로 나은 기업들에게는 부실한 납품업체들을 돕도록 독려해 왔으며, 은행에 대해서도 대출을 확대하도록 압박함으로써 경제를 떠받쳐 왔다." (이코노미스트지 2009년 6월18일版 `No exit` 중에서)

이코노미스트誌는 이를 `가족 자본주의(family capitalism)`라고 비유했는데, 도이치뱅크에 따르면 일본 투자적격 기업 회사채의 지난 1981년 이후 5년 평균누적 부도율은 0.1% 수준에 불과하다. 즉, 투자적격 기업의 99.9%는 5년 내에 부도를 낼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이 같은 경험 부도율은 무디스 평정 기준을 적용할 경우 정확히 최상위 등급(Aaa)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본의 투자적격 기업들은 미국 정부와 부채상환 능력이 같거나 오히려 더 우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미국 투자적격 기업의 5년 평균누적 부도율은 일본의 13배에 달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무제한 양적완화와 무기한 제로금리 정책의 수렁에 스스로 빠졌다지만, 부도율이란 기준을 적용한다면,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미국은 `일본화` 대열에서 탈락이다.

일본화의 경로를 밟아 가고 있는 곳은 전술했듯이 유럽이다. 유럽 투자적격 기업들의 1981년 이후 5년 평균누적 부도율은 0.5% 수준으로 미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나라도 일본화의 경향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업 구조조정의 거시경제적 효과>(2011.7) 보고서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도 이자를 다 내지 못하는, 그래서 빚을 더 내서 이자를 갚아야 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수(2010년 기준)가 전체의 64.0%에 달했다.

3년 이상 이런 사정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기업 - 일반적으로 이런 회사를 `한계기업`이라고 부른다 - 은 전체의 32.9%에 이르고, 7년 넘게 이러고도 살아남아 있는 기업의 비중도 무려 8.4%에 달한다.

이런 부실기업들의 비중이 그동안 쉼없이 높아져 왔다는 점은 더욱 큰 문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정부의 다양한 중소기업 지원 금융정책이 있음을 보고서는 실증하고 있다.

매우 당연한 얘기겠지만, 보고서가 실시한 계량분석에 따르면, 한계기업들은 생산성과 수익성이 크게 뒤떨어지며, 고용창출 능력과 투자확대 능력도 절대적으로 저열하다. 이런 한계기업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그 경제의 생산성과 수익성, 고용 및 투자 창출 능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일본화(japanization)`의 핵심은 바로 좀비(zombie) 경제다. 일본화란 정부의 인위적인 구조조정 억제 정책으로 연명하게 된 좀비 기업들이 국가자원의 상당부분을 빨아먹어 경제 전체가 빈혈에 빠져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이미지출처:한국은행)ⓒ글로벌모니터

(이미지출처:한국은행)ⓒ글로벌모니터

이미지 확대보기


`일본화`는 그 자체로 종결된 현상이 아니라 진행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모델인 일본의 경제는 지금 `일본화`의 종착점을 향해 가고 있다. 통화발행을 폭발적으로 더 늘려 물가상승률을 2%로 끌어 올리고, 엔화를 대폭 절하하며, 정부의 재정지출도 대폭 확대하겠다는 게 일본 새 정부의 구상이다.

일본 새 정부의 획기적 정책이 이끌 일본화의 종착점은 셋 중 하나일 것이다.

1) 엔화 가치와 일본 국채시장 및 정부재정의 붕괴로 귀결되거나,

2) 이를 우려한 새 정부가 새 정책을 없던 일로 해서 지금과 같은 無성장, 無인플레, 無부도, 無이자, 低실업, 高정부부채 구도를 무한정 끌고 가면서 아주 서서히 가라앉거나,

3) 새 인플레 정책이 모든 경제학 이론을 무색케 할 정도로 성공하거나.

자민당의 아베 신조 정권이 일본화를 3)의 경우로 귀결시킨다면 일본은 국가 자체로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 - 마치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과거처럼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평화상을 받은 유럽연합처럼 - 하게 될 것이다. 살벌한 자본주의 경쟁경제의 대안으로 `相生 가족 자본주의`의 길을 인류에 제시한 공로로.

이 경우 한국은행 보고서의 다음과 같은 정책제안은 무효가 된다. "(정부는) 한계기업들이 금융지원에 의해 계속기업으로 존속할 소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댓글 작성

0/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