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Monitor

窮則變 變則通.."악재는 곧 호재다"(?)

  • Morning Brief
  • 2012-06-13 05:54
  • (글로벌모니터 안근모 기자)
시장이 주역의 오묘한 원리를 깨달은 것일까. 아니면 변증법적 상상력을 발휘한 것일까. 밤사이 서양의 주식시장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모순이 누적되면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데 베팅했다.

따라서, 적어도 12일 서양의 주식시장에 계속 제공된 악재들은 곧 다가올 호재의 목록일 뿐이었다.

이탈리아로 번져가는 위험은 유로존, 특히 독일과 유럽중앙은행(ECB)의 보다 전향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유럽의 국채시장은 유로존의 심장부인 독일 국채에까지 칼 끝을 겨눴다. 그리고, 고조되는 유럽의 위험은 미온적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고를 활짝 열어제낄 것이다.

얼어붙은 동토의 저 밑바닥에서 비로소 양기가 움트기 시작하는 때는 엄혹한 동짓날의 깊은 밤이라지 않았던가. 밤이 가장 깊다는 것은 이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함을 의미하는 것이니.

주식시장에 "낙폭과대" 만한 대형호재가 없다는 격언은 공포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이러한 창의적 역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 지난 밤사이에 쏟아진 호재의 리스트들을 한 번 점검해 보자.

1. 스페인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마지노선인 7%로 내달리고 있다. 오후장 들어 다소 반락하며 아쉬움(?)을 주기는 했지만, 오전 한때 6.83%로 치고 올라가며 유로화 도입이후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피치가 스페인 18개 은행에 대한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피치는 "지난주 국가신용등급을 내린데 따른 후속조치"라면서도 "스페인의 경제는 내년까지 리세션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은행들의 대출자산도 계속해서 부실화돼 스트레스가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1-1. 스페인 은행들을 구제해봐야 스페인 경제와 스페인 정부의 채무상환능력은 오히려 나빠질 것으로 우려된다. 유럽연합이 스페인 은행산업에 대한 철저한 구조조정을 벼르고 있는 가운데, 스페인 은행권에 투입될 공적자금에는 8.5%의 고금리가 붙을 예정이다.

구제금융을 받으면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는게 독일 등 컨티넨털 유럽의 사고방식이지만, 앵글로색슨에 경도된 시장 참여자들은 은행산업의 수술이 실물경제를 본격적으로 경색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스페인 은행산업에 대한 구제금융은 그리스 정부에 대한 구제금융의 미시적 버전에 다름 아니다. 스페인의 주택가격은 지난달에도 전년동기비 11.1% 하락했다. 긴축과 구조개혁에 돌입한 은행들이 돈줄을 더욱 조이면 집값은 더욱 빠르게 떨어질 것이다.

스페인 정부의 재정조달 비용을 경감시키고, 스페인 실물경제에 대한 원활한 금융공급을 재개하는데 맞춰졌던 구제금융의 두 가지 목표는 이틀만에 실패로 판명난 셈이다. 유럽연합은 "이번에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똑같은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2. 이탈리아의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6.3%로까지 상승했다. 지난 1월말 이후 최고치이자, 지난주 스페인과 같은 수준이다. 정부가 부실은행을 정상화하기는 커녕, 그들의 자금에 의존해 겨우 재정을 조달해 나가고, 정부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국채가격 하락으로 더욱 부실해지는 꼴이 이탈리아나 스페인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이달 초에만 해도 80bp 수준이던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간의 수익률 격차는 이제 50bp 수준으로 축소됐다. 그놈이 그놈이란 거다.

유로존은 스페인 정부를 구제할 돈조차도 없다는게 시장의 생각이지만,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펙터 재무장관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만약 이탈리아가 필요하다고 요청한다면 구제금융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시장을 위무(?)했다.

이탈리아의 마리오 몬티 총리는 "전적으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발끈했지만, 당장 모레 예정해 놓은 국채 3년물과 8년물 입찰이 태산같은 걱정거리가 됐다. 이탈리아는 재정을 조달하는데 연 6%의 금융비용을 부담해야하지만, 지금 그들의 세수 증가율(명목 경제성장률)은 제로 수준에 불과하다.

3. 스페인 방벽이 무너지면서 이탈리아가 최전선(FEBA: Front Edge of Battle Area)으로 내몰리자,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이른바 최우량국들도 FEBA의 총성을 직접 귀로 듣게 됐다.

가장 안전하다며 각광을 받던 독일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이날 12bp 급등하면서 1.42%를 기록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같은 찌질한 국채의 "12bp"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상승폭이다.

네덜란드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14bp나 뛰면서 1.98%에 거래됐다. 이날 25억 유로의 국채(2033년 만기)을 발행하려고 했지만, 실제 팔린 것은 16억5000만 유로에 불과했다.

핀란드의 10년물 수익률은 13bp 올라 1.78%를 기록했다.

피치는 독일을 포함한 유로존 국가 모두의 신용등급이 강한 하향압력을 받고 있으며, 만약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한다면 AAA 국가들의 신용등급도 강등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루라도 빨리 터널 끝에 빛이 보이지 않는다면 실패의 위험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피치는 밝혔다.

이와 관련, 한 주식시장 참가자는 "혹시라도 그리스가 17일 총선에서 親구제금융 정당을 뽑는다면 증시는 강력하게 반등할 것 아니냐"고 받아쳤다.

4. 어둠이 깊으면 촛불 한 줄기도 돋보이는 법이다.

이날 방송된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그동안 (시장에서) 거론돼온 모든 경기부양 방법에 대해 나는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달말 끝나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연장하든, 모기지 담보부 증권(MBS)을 더 사들이든 모두 좋다고 그는 말했다. 대표적인 비둘기파이자, 올해 FOMC 투표권이 없는 그는 전날에도 비슷한 발언을 했지만, 시장은 오늘에서야 새삼 그의 말에 주목하며 환호했다.

전날 에발트 노보트니에 이어 조제프 마쿠치 ECB 정책위원도 "제로금리 정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의 폴 터커 부총재는 "은행에 대한 유동성 지원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피치는 "ECB가 제3차 장기대출(LTRO)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LTRO는 피할 수 없다"고 예상했다.

5. 위기를 먹고 사는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탁월한 해법을 내놨다. 그는 독일 최대의 대중 일간지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독일 정부는 (스페인 같은) 남유럽의 주택을 별장으로 매입하는 국민들에게 세금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마침 이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스페인의 문제는 정부가 아니라 주택시장"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정부에 대한 구제금융 대신 은행 구제를 선택한 것이 편법 아니냐는 지적에 대한 해명이니 루비니 교수의 제언과 연결 짓는 건 좀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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