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Monitor

물가목표제, 그 자체가 문제다

  • Analysis
  • 2016-01-04 01:55
  • (글로벌모니터 안근모 기자)
*이 칼럼은 1월4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렸습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단지 0.25%포인트 인상하는 걸 두고 세계경제는 지난 1년 내내 촉각을 곤두세웠다. '공포감'까지 불러일으켰던 미국의 금리인상 결과는 그래 봐야 0.25~0.50%에 불과하다.

이런 세상에 금리가 연 300%에 달하는 나라도 있다. 러시아 동남쪽의 카자흐스탄이다. 이 나라 은행이 다른 은행에게서 단 하루 돈을 빌리기 위해서는 이렇게 많은 이자를 줘야 한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나라의 물가는 0.7%밖에 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단 나흘 사이에 밀가루 값이 47%나 오른 곳이 있다. 카자흐스탄 남서쪽의 아제르바이잔이다.

두 나라 모두 석유와 가스 수출에 나라살림 대부분을 의존한다. 에너지 값 폭락으로 두 나라 경제는 엉망이 됐다. 이 둘은 고정환율제를 고수하다가 올 들어 포기하고 새로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공통점도 있다. 그 결과 두 나라의 통화가치는 추락(환율 폭등)했다. 수입물가가 뛰어 올랐다. 화폐의 신뢰를 잃을까 봐 중앙은행이 돈줄을 바짝 죄었다. 이자율이 폭등했다. 직접 겪어 본 우리는 어떤 상황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원자재 값 폭락과 중국경제 둔화, 미국의 금리인상 등 한꺼번에 몰려온 악재들로 신흥국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나마 지난 1990년대말 아시아 외환위기 때에 비해서는 덜 심각하다고들 한다. 상당수의 신흥국이 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는 점이 그렇게 보는 근거 중 하나다.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쏟아 붓다가 망하게 되는 일은 거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은 변동환율제의 막차를 탄 사례다.

낡은 유물이 돼 버렸지만, 고정환율제는 사실 큰 장점이 있다. 환율 불확실성이 없기 때문에 무역이 활성화된다. 무역수지 적자를 내면 중앙은행은 그 적자만큼 통화량을 긴축한다. 그러면 국내물가가 하락해 국제수지도 균형을 되찾는다.

하지만 이런 엄격한 긴축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자동적으로' 통화량을 줄이면 실업이 증가한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부는 그래서 고정환율제 하에서도, 국제수지 적자인데도, 부양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한다. 물가는 더욱 높아진다. 화폐 가치가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에 고정된 화폐 가치를 지키려면 외환보유액을 무한정 방출해야 한다. 외환위기다.

그래서 현대의 환율제도는 '그냥 시장에 맡겨두는' 쪽으로 방향이 모아졌다. 변동환율제다. 국제수지가 악화되면 시장의 힘에 의해 환율이 뛰어 오른다. 수입품이 비싸진다. 수출 경쟁력은 높아진다. 국제수지는 자동적으로 조정된다. 그런데 이 역시 문제가 있다. 국제수지 적자로 환율이 뛰는데도 돈을 계속 풀면 물가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진다. 그래서 중앙은행들은 '물가목표제'를 도입했다. 물가가 일정 폭 이상으로 오르내리지 않도록, 통화량을 물가에 '고정'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물가상승률 목표를 2%로 낮춰 설정하면서 보다 강화된 책임을 지기로 정부와 합의했다.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정부가 화폐의 가치를 무언가에 '고정'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금에 고정하든(금본위제), 달러에 고정하든(고정환율제), 자국 물가에 고정하든(변동환율제 하의 물가목표제), 단지 문제의 양태만 다를 뿐이다.

미국의 예를 보자. 지난 20년간 미국의 내구소비재 물가는 연평균 1.9%씩 떨어졌다. 중국의 산업화 영향이 크다. 이런 환경에서도 중앙은행은 물가목표를 지켜야 한다. 돈을 더 풀어야 한다. 그 결과 미국의 전체 개인소비지출 물가는 연평균 1.8%씩 상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서비스물가는 연평균 2.5%씩 올랐다. 월세는 해마다 3.0%씩 뛰었다. 화폐변동에 대한 품목별 가격 탄력성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유가폭락이 가세한 지금 중앙은행들은 더욱 더 완화적인 통화정책에 매달리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월세는 더 빠른 속도로 상승 중이다.

이것은 중앙은행들의 규범이 된 물가목표제의 치명적인 결함이다. 빈부격차를 늘리고 국민을 빚더미에 올라앉게 했으며 반복된 금융위기를 낳았다. 더 좋은 화폐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세상이 다 바뀌는 건 아니지만, 심각한 결함을 가진 제도를 고수하는 것은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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