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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ly Brief]협상의 달인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구글 싸이월드 요즘 이공순 기자 [기사입력 2018-06-08 오전 7:17:54 ]

  • 트럼프가 자칭 '협상의 달인'이라고 자처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장삿군 기질'을 논하지만, 정작 그가 무엇을 '협상'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트럼프가 말한 것(America First)를 너무 고지곧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아메리카'는 도대체 무엇일까?

    국가를 단일한 행위자(a single actor)로 간주하는 것은 전통적인 정치학의 인식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국가, 특히 '이해관계'라는 측면에서의 국가는 결코 단일하지 않다. 국가는 서로 대립되는 이해 관계를 갖는 다양한 세력들이 어쩌다보니 한데 묶인 결합물일 뿐, 선험적으로 주어진 '단일한 이해'를 갖는 독자적 주체는 아니다.

    1997년의 한국의 IMF bail-out을 생각해보자. 흔히 국가적 재난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매우 단편적인 인식에 불과하다.

    외환위기는(그리고 그로 인한 원화 가치 폭락과 이자율 급등, 자산 가격 붕괴는) 같은 정치 공동체 내의 누군가에게는 이득이었다. 비록 대부분에게는 손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컨대 현금 보유자(특히 달러화 보유자), 수출업자들에게는 IMF 구제 금융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 전개는 엄청난 이윤을 가져다 주었다.

    배가 고파진 것은 대중이었으며, 단기적으로는 '국가'가 부실 상태에 빠지고 이른바 경제 주권을 상실함으로써 곤궁에 처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국민 '모두가' 곤경에 처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상습적으로 외환위기를 맞았던 남미 국가들에게는 외환 위기와 같은 '경제적 기회'는 늘 기존 대부호 계급의 자산 축적의 계기가 되었다.

    정치적인 반발을 억압할 수만 있다면, 외환위기는 지속적으로 대자산가들의 지위를 공고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편이었던 것이다(이같은 내부의 계급적 상황이 남미의 만성적 외채 위기를 야기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마찬가지로 트럼프의 '아메리카'도 단일하지 않다. 그가 천명하고 있는 정책들은 분명 미국 내의 어느 누군가에게는 '손실'이다.

    유가 상승은 트럼프의 지지 기반인 텍사스주에게는 혜택이지만, 캘리포니아와 뉴욕의 월급쟁이들에게는 손실이며, 달러화 강세는 수입 업자들에게는 이득이지만, 수출업자나 소비자들에게는 결코 이득이 아니다.

    무역 분쟁에 있어서는 심지어는 미국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분석 결과가 쏟아져 나올 정도이며, 외교 안보 측면에서도 과연 미국이 얻는 것이 무엇인지 의아한 경우가 많다.

    트럼프가 지난 1년 5개월 동안 대외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열거해 보자 : TPP 탈퇴, NAFTA 재협상(파기 직전이다), 기후협약 탈퇴, 이란 핵 협정 파기.

    이쯤 되면 트럼프는 무협소설에 나오는 천하를 주유하며 고수들을 찾아가 격파하는 주인공이라고 불러도 손상이 없다.

    공식적인 '파기'는 아니더라도, 비공식적인 무력화를 포함하면 그 목록은 터무니 없을 정도로 늘어난다: 우방에 대해서는 무역 보복을 면제해 주던 전통적인 대외 경제 노선에서의 이탈, 나토의 무력화, Pivot to Asia 정책의 철회,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정책의 중단.

    이 가운데 가장 특이한 것은 중동에서의 트럼프의 정책이다. 트럼프는 오바바 행정부 시절 미국이 중동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던 IS와 시리아 내의 서방 지원 반군을 붕괴시켰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역할이 없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중동 내에서 미국의 역할이 없다.

    트럼프가 중동에서 미군을 완전 철군하겠다고 트위터로 호언장담한 바 있기 때문에, 이를 미국의 의도적 정책이라고 볼 수는 있는데, 그 정도가 너무 심하고 미국의 공백을 러시아가 메우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미국을 대신해서 중동 내에서 거의 완전한 헤게머니를 장악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의 방식은 무력을 사용하거나 직접 개입하기 보다는 기존 세력들 사이의 '협상'을 중재하는 쪽에 맞춰져 있다.

    지난 달 하순, 푸틴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네탄야후 총리와 회담했다. 네탄야후와 회담 이틀 전에는 푸틴은 시리아의 알 아샤드 대통령과 만났다. 그리고 미국의 이란 핵 협정 파기 직후 이란 외무부 장관과 회담했으며,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났고, 아베와 회담했다.

    요즘 세상에서 제일 외교적으로 바쁜 인물이 푸틴이다. 지난 2015년까지만 해도, 글로벌 외교가의 '불가촉 천민' 취급을 받던 푸틴이, 이제는 그를 만나기 위해 열국의 정상들이 줄을 서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푸틴은 알 아샤드와의 회담에서 "시리아 내의 모든 외국 세력은 모두 철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언론들은 이를 시리아 내의 이란 민병대의 철수 요구로 해석했지만, 중동 내에서 활동 중인 독립 저널리스트들은 이를 시리아 내의 미군과 터키군 철수로 해석했다.

    알 아샤드가 이란 민병대 주둔을 지지함으로써 독립 저널리스트들의 판단이 옳았던 것으로 판명났다. 이란은 시리아 주둔은 지속하면서도 이에 반발하여 간헐적으로 폭격을 지속한 이스라엘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은 자제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서는 인민들이 죽어나갔지만, 시리아 국경에서의 이스라엘-이란간 무력 충돌은 그럭저럭 진정되었다.

    사우디는 자신들이 배후에서 지원하던 이라크와 시리아의 IS 세력들이 붕괴되고 이들 지역에 대한 레버리지를 상실하자 러시아에 접근했다.

    원유 수급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이란의 위협을 억제하는데 있어서 러시아 카드는 사우디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되었다.

    대신에 예멘에서는 인민들이 죽어나갔지만, 그러나 이란과 사우디 사이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미국이 보이지 않는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끔씩 사우디를 방문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끝이다.

    유일하게 미국이 '생색낸' 중동 정책은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이스라엘의 영토 주권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이 전부다. 이런 일에는 군대도 돈도 들지 않는다. 대신에 그만큼 영향력도 없다.

    그 결과, 중동에서는 아주 기묘한 균형이 나타났다.

    1.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주권을 국제적으로 용인받는 첫 단계를 성취했다.

    2. 이란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의 잠정적인 군사력 주둔을 묵인받았다.

    3. 사우디는 이란과의 극단적인 충돌은 피했으며, 예멘 사태는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고 있다.

    4. 시리아는 국가 재건에 나섰다(제헌의회 소집 예정이다). 알 아샤드 정권은 보존되었다.

    5. 러시아는 이스라엘, 시리아, 이란, 사우디 사이에서 해결사는 아니지만, 적어도 중재자로서의 지위는 확고히했다.

    즉, 미국이 발을 뺀 상태에서 중동 사태가 어느 한쪽으로 균형추가 기울지 않고 현상 유지가 이뤄진 셈이다.

    이것으로서 미국으로서도 재개입해야 하는 부담을 덜었으며, 러시아는 영향력을 넓혔고, 이스라엘과 사우디, 이란은 각기 불만은 있지만, 어쨌든 결정적인 손실은 모면했다.

    국제 유가는 미국이 사우디에게 일 평균 100만 배럴의 증산을 요청했고, 사우디가 이를 수용했다는 뉴스로 오락가락했는데, 한편으로는 기술적으로 단기간 내에 사우디가 이처럼 대규모 증산을 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관측과, 다른OPEC 국가들이 사우디의 결정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는 뉴스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스타일은 좀 사납지만, 사우디에 대한 증산 요청으로 이란 핵 협정 파기로 인한 국제적인 비난이 거세지는 것을 막는 정도의 제스쳐는 취했다.

    만일 이란 핵 협정 파기로 국제 유가가 빠르게 상승했더라면 그 책임은 미국이 모두 뒤집어 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가는 조금 미묘한 구석이 있다. 한국의 이주열 한은총재, 인도의 우르지트 파텔 중앙은행 총재에 이어, 인도네시아의 페리 와르지요 중앙은행 총재가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 페이스 조절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

    런데 이 세사람의 주장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주열 총재는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에 따른 외화 자금 유출을 경고했지만, 파텔과 와르지요는 연준의 금리 인상을 문제시 삼은 것이 아니라, 연준의 QE roll-off를 문제시삼았다. 즉 연준이 보유 자산 축소 속도를 좀 늦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달러 펀딩 부족'(dollar funding shortage)를 신흥시장이 당면한 위협의 핵심 원인으로 꼽았다. 이는 그동안 nightly가 주장해온 '화폐 소멸 현상'(달러화 부족 현상)과 동일한 성격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와르지요는 이같은 달러 펀딩 부족을 악화시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유가 상승을 꼽았다.

    즉 무역 적자 신흥시장 국가에 있어서는 유가 상승으로 인한 달러화 지출 증가가 통화 위기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만일 유가가 하락한다면, 이는 무역 적자 신흥시장 국가에게는 다소나마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즉, 미국의 대사우디 증산 요청은 미국의 통화/금융 정책에 대한 불만을 약화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와르지요는 미국이 커뮤니케이션을 더 명확하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것도 매우 의아하다.

    왜냐하면, 공식적으로는 연준은 현재보다 더 명확할 수 없을만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와르지요는 이런 발언을 했을까? 통화정책에 준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재정 정책이 매우 혼란스럽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재무부 현금 보유 현황

    ⓒ글로벌모니터

    재무부가 국채를 발행하여 이를 모두 소진한다면(즉 세출로 쓴다면), 국채 발행이 증가하는 만큼 미국 내의 인플레이션 압력은 증가하며 현재의 조건에서는 달러화는 약세를 보일 것이다(현재 조건에서는 달러화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금리가 아니라, 중앙은행이 직접 개입하는 화폐량 정책이다).

    그런데 만일 미국 재무부가 국채를 대량 발행한 뒤, 그 현금을 사용하지 않고 축장하고 있다면, 이는 시장에서 달러화 현금 유동성을 감소시킨다.

    미국 재무부의 현금 보유 변화 추이는 이해하기 상당히 곤란하다. 왜 지금 시점에서 재무부가 보유 현금을 지난 2016년말 수준으로 다시 높혔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같은 재무부 현금 보유 규모 변화는 신흥시장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와 동조하는 현상을 보인다.

    현재 달러화 대비 신흥시장 통화 가치는 트럼프가 취임할 당시의 수준으로 떨어졌다(신흥시장 통화 대비 달러화 강세).

    ⓒ글로벌모니터

    지난 주 들어서서야 재무부 보유 현금이 다소 감소했는데, 만일 이같은 감소 경향이 지속된다면, 신흥시장의 달러화 부족 현상(달러화 강세)은 완화될 것이다(달러화 가치는 treasury balance에 약간 후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조만간 신흥시장 통화 대비 달러화 약세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이같은 변화는 ECB가 6월 회의에서 tapering을 할 것이라는 강력한 시그널을 보낸 것과 동시에 이뤄졌다.

    과연 신흥시장 통화의 달러화 대비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ECB의 '통화정책 정상화'인가, 아니면, 미국 재무부의 현금 축장 규모 변화인가?

    왜 미 재무부는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오퍼레이션을 하는가? 미국이 진정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쨌든 현재 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신흥시장 중앙은행들이 미국의 달러화 정책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노골적으로 표현(그것도 집단적으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지난 2010년의 QE2 이후 아마도 가장 대규모의 집단적 반발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같은 반발을 단순히 묵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동에서의 현상 유지를 제외한다면, 트럼프의 대외 정책에 있어서 가장 큰 성과는 한반도 이슈 해결이었다.

    그러나 12일로 예정된 북미 회담에서 매우 애매한 형태의 '종전 선언'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 성과 또한 빛이 바랠 가능성이 높아졌다.

    동시에 이는 실제적인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는 많은 시간과 단계가 소요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가장 큰 의문이다. 시간이 소요될수록 북한의 비핵화/관계 정상화 가능성은 낮아지며 변수는 많아진다. 동시에 트럼프의 '업적'도 퇴색된다.

    애당초 이번 회담에서 '정치적 선언(종전 선언)/단계적 실현' 정도의 결과만을 예상하기는 했지만, 지난 며칠 동안의 뉴스는 아마도 그보다도 낮은 단계의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트럼프는 미국 내에서 민주당의 비난(실제 성과는 없다는 비난)에 처할 것이며, 트럼프가 내세울만한 유일한 성과가 허물어질 수도 있다(즉 다시 북한 압박 정책을 지속하라는 압력에 처하게된다).

    뿐만 아니라, 이같은 단계적 해결 방식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선호했던 한반도 해법이기도 하다. 즉, 현재까지의 북미 협상은 사실상 중국의 판정승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북한 테마주에게는 그다지 유쾌한 소식은 아닐 것이다.

    트럼프의 요란한 트위터와는 달리, 그가 협상의 달인이라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도처에서 소음을 만들고는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오히려 반대의 목소리를 키웠을 뿐이다.

    물론 트럼프가 협상의 달인으로 포장된 것은, 애초에 그의 사업이 부실했기 때문이다(사업이 순조로웠다면, 부채 협상이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그의 진가는 뭔가를 만들어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뭐가 잘못되었을 때, 빠져나가는 기술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진가를 보여주어야만할 시간이 가까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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