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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Depth]FTPL : 아베의 새로운 실험? 아니 핑곗거리?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구글 싸이월드 요즘 오상용 기자 [기사입력 2017-03-15 오전 12:39:39 ]

  •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리스토프 심스의 `물가수준 재정이론(FTPL:Fiscal Theory of the Price Level)에 대해서는지난달 간략히 언급한 바 있다. 심스의 이론은 연초부터 아베내각과 경제학계, 도쿄 IB들 사이의 갑론을박을 낳았는데, 최근에는 의회(정치권)로까지 이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그간의 전개를 중간 정리하고 가자.

    1. 물가수준 재정이론

    심스의 FTPL은 작년 여름 잭슨홀 회의에서 소개됐다. 심스의 이론이 일본내 비상한 관심을 끌어모은 계기는 그해 11월 하마다 고이치(아베의 경제고문)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와 인터뷰에서 하마다는 "그의 강연을 듣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일찌기 디플레이션은 통화적 현상이라고 주장했으나 이제 나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마다는 올초 문예춘추에 기고한 글에서도 심스의 이론을 상세히 소개하며 이를 어떻게 경제정책에 접목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했다. 그럼 심스가 말하는 FTPL이란 무엇인가. 그 요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제로금리의 하한에 직면한 상황에서 양적완화나 마이너스 금리와 같은 추가적인 통화정책은 그 효력을 잃게 된다. 즉 통화정책만으로는 2% 물가목표를 안정적으로 달성할 수 없다. FTPL을 단순히 정리하면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물가레벨의 조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현실에선 `2% 물가상승 목표의 지속적인 달성이 가능하기 전까지는 세금을 올리지 않고 재정확대 정책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2. 일본의 적용례

    일본에서 몇차례 강연회를 가진 심스는 일본의 상황에 맞는 FTPL 활용법을 크게 두가지로 제시한다.

    <①먼저 2% 물가목표 달성전까지 소비증세를 무제한 연기한다고 선언한다. ②일본정부가 세워놓은 기초재정수지 개선 목표도 2% 물가목표 달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즉 2% 물가목표 달성전까지는 기초재정수지의 균형달성이라는 목표를 미뤄야 한다. 이 두가지를 통해 경제주체가 미래의 재정지출 삭감이나 증세를 의식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좀 더 명확하게는 정부부채를 증세가 아닌 인플레이션으로 상쇄하나간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

    경제주체들이 현재의 재정적자와 미래의 조세를 연결시키지 못하도록, 즉 `리카도 동등`이 작동할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플레이션도 일종의 세금인 게 사실이지만, 심스는 "증세와 달리 일정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심스의 이론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정부의 재정규율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플레가 조성되지 않는다`가 되겠다. 폴 크루그먼이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을 위해 `무책임한 중앙은행`을 주문했다면, 심스는 `무책임한 정부`를 요구하고 있다.

    물론 심스는 BOJ의 통화정책이 불필요하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는 "2% 물가목표 달성을 위해선 재정과 금융이 상호 협력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와 인터뷰를 한 니혼게이자이 기자가 헬리콥터머니가 아니냐고 묻자 심스는 "비슷하다, 뭐라 부르든 상관은 없다"고 했다. 다만 그는 "지금처럼 BOJ가 대차대조표를 빠르게 확대하는 상황은 결과적으로 재정부담으로 이어질 위험이 큰 만큼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심스의 조언대로 행할 경우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위협은 없을까. 이에 대해 심스는 "2% 이상의 물가상승률을 상당기간에 걸쳐 실현하고, 금리도 3%대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상승했다면 물가통제의 역할은 다시 BOJ 혼자서 담당하면 된다"고 했다. 즉 "인플레가 다시 낮아지면 금리를 내리고 반대의 경우는 금리를 높이는 정상적인 금융정책으로 돌아면 된다"는 것이다.

    3. 흔적과 냄새

    일본에서 심스의 주장이 단순히 학계내 논쟁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있다는 흔적이 최근 계속 발견되고 있다. 지난달초 일본경제연구센터에서 자신의 이론을 설파한 심스는 강연 직후 BOJ를 방문해 간부들과 면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분명 구로다 하루히코와도 이야기를 나눴을 거다.

    BOJ만 방문했을까. 하마다의 주선으로 아베 내각의 주요 인사들을 두루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자 FTPL은 의회내 논쟁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의회에선 여야 의원을 가리지 않고 `인플레이션으로 정부 부채를 갚아야 한다`는 심스의 이론을 따져 묻는 질의가 내각과 BOJ측에 잇따랐다.

    더 흥미로운 전개는 지난 1일(3월1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아소 다로 재무상의 입을 통해 이뤄졌다. 이날 아베는 "나는 PB(기초재정수지)균형 지상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뒤이어 아소 다로 재무상도 "재정의 균형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의 성장이다"라고 거들었다.

    물론 아소는 9일 의회 답변에서는 말을 바꿔 "2020년 기초재정수지 흑자 목표를 폐기한 게 아니다. 이를 견지하고 있다"고 했지만 지난 1일 아베와 아소의 발언은 심스의 이론과 맞물려 상상력을 자극하기 좋았다.

    *사실 2020년에 기초재정수지 흑자를 달성한다는 일본 정부의 목표는 공허하기 짝이 없다. 내각부가 연초 내놨던 `중장기 재정 추산`에 따르면 일본경제가 2% 실질성장, 3% 명목성장을 달성한다는 최상의 시나리오 하에서도 2020년 기초재정수지는 8조3000억엔의 적자를 낼 전망이다.

    내각부가 현실적인 시나리오라고 제시한 1% 실질성장과 1%대 중반의 명목성장 하에선 11조3000억엔의 적자를 보게 된다. 그러니 "2020년 기초재정수지 목표를 견지한다"는 아소의 발언은 무의미하며, 오히려 "재정균형 보다 경제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수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 9일 의회답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로다는 "심스의 이론은 실증적인 연구가 충분히 이뤄져 있지 않다"면서 "일본뿐만아니라 서구에서도 현실적인 정책이론으로 의미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QQE 도입당시 정부측의 재정건전화 약속을 전제로 했던 만큼 구로다는 BOJ 전체의 입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임기를 1년 남긴 상황에서 새로운 실험 보다는 사고 없이 임기를 끝내는 게 구로다 자신의 과제다.

    4. 세개 화살과 근친성..그리고 한계

    사실 심스의 이론이라는 게 지난 20년간 일본이 지속했던 실험과 내용상 크게 다른 것은 없다. 아베노믹스의 세개의 화살, 그리고 작년 9월 YCC-QQE 도입이후 새삼 강조된 재정과 통화정책의 공조와도 높은 근친성을 보인다.

    심스의 말처럼 정부의 선언만으로 인플레이션 기대가 솟아오를 수 있는가는 이론 세계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현실을 보자. 1998년이후 일본은 대규모 재정정책을 반복해 왔다. 그 과정에서 재정건전화에 대한 우려 또한 높았지만 필요 조치들은 정치논리에 밀려 연기를 거듭했다.

    아베 정권 들어서만도 소비세는 이미 두차례 연기됐다. 고용시장은 3년전부터 완전고용에 들었지만 추경은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 - 이 얼마나 소모적인가. 그 세월동안 일본의 재정규율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 이제 현실에선 `리카르도 동등`이 경제주체들의 의식에서 작동할 틈도 없건만, 인플레이션 기대는 딱히 생겨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심스`류의 재정정책이 목적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을까.

    지난 20여년 일본내 씀씀이가 줄고 물가가 계속 가라앉은 것은 증세에 대한 공포라기 보다 초고령화 사회가 가져온 구조적 불안 때문이다. 나이는 먹고 모아놓은 돈은 빠듯한데 하루하루 몸 상태는 예전같지 않다. 나라 전체로는 각종 사회보험료 부담의 증가가 의식되지 않을 수 없다. 사회보장시스템과 관련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초고령화 사회의 진전과 함께 더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모아야 하고 아껴야 한다. 이러한 현실 앞에 심스의 이론이 적합한가는 심히 의문스럽다.

    5. 그럼 FTPL의 용도는..

    최근의 일본 경제는 당장 심스의 FTPL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물가 기반은 작년 보다 안정될 것으로 보이고 경기지표도 아직은 견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하마다 고이치를 비롯한 아베내각 인사와 보수 언론들은 FTPL 논의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걸까. 멀지 않은 미래에 쓸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①주지의 사실이듯 BOJ의 통화정책은 시간이 갈수록 내적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외적으로는 트럼프 정권이, 엔 약세 유도로 이어지는 BOJ의 `YCC-QQE`를 무한정 봐낼 것이란 보장도 없다. BOJ의 통화정책이 QQE 본연의 한계, 그리고 국제정치적 한계에 직면한다면 정부의 재정정책이 매크로 안정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부상할 수 밖에 없다. 그 시점에 FTPL은 일본의 정책전환에 그럴싸한 이론적 배경을 제공할 수 있다.

    이번주 열리는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의는 `그 시점이 혹시 앞당겨지지 않을까` 여부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Weekly Asia에서도 전했듯 미국의 므누신 재무장관은 이번 G20 회의에서 환율 문제에 포커스를 맞출 예정이며 동시에 `글로벌 불균형의 원인은 주요 교역국이 글로벌 수요를 떠받치는 책임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할 예정이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고강도 통화정책의 자제와 재정정책의 강화가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진 거다. 트럼프 행정부가 호시탐탐 노리는 독일에게도 같은 압박이 가해질 것이다.

    ②자민당의 당규개정으로 아베에겐 3연임의 길이 열렸다. 내년 가을 당내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면 이론상 2021년 9월까지 총리를 맡을 수 있다. 이 경우 총리 직함을 달고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구경할 수 있다.

    그런데 소비세 인상 시점을 두차례 연기한 결과, 또 다시 법을 고치지 않으면 2019년 10월에는 소비세를 예정대로 인상해야 한다. 역대로 소비세 인상은 정치권의 무덤이었다(물론 2014년 소비세 인상에도 불구 아베는 자리를 보전했지만). 소비세 인상으로 경기가 나빠지고 민심이 흉흉해져 지지율이 추락하면 아베는 도쿄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재선거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 - 그로선 짜증날 노릇이다.

    그러니, 좀 먼 이야기이긴 하나, 2019년 10월 소비세 인상을 모면하기 위해 한 수를 준비해야 한다. 이번 수는 아예 소비세 인상이 필요 없다는 좀 더 용감한 논리여야 먹힐 것이다. 심스의 이론은 여기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작년의 사례를 감안하면 아마도 내년 봄부터 자민당 친위대를 중심으로 `소비세 인상 연기론`이 (놀랍지도 않게)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 거다. 그간 아베는 소비세 인상을 연기할 때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을 끌어들였다. 폴 크루그먼과 조셉 스티글리츠가 대표적이다. 심스의 용도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참고로 스티글리츠는 오늘(14일)도 총리관저에서 열린 경제재정자문회의에 참석해 소비세 인상은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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